있는 그대로 완전한 자유
이것이 내 마음이 그려낸
불국토이며 본토이며
본바탕(心地)인 것이다.
이렇게 투득하여 밝게 알아지면
이것을 일러 진정한
자유인이요,
무사인이요,
해탈인이라 부른다.
그래서
이런 경지에 노니는 해탈인은
“모든 경계를 대할 때
마음에 다툼과 혼란이 없다” 고 한다.
그렇지 않은가.
모든 경계가 바로
내 마음속에 스스로 그린 그림인데
어찌 내가 그린 그림에
다툼이 있고 혼란스러워 하겠는가
지금 그대도 알고 있지 않은가.
알면서도 또 욕심을 부려
내가 그린 그림을 더 잘 그리려고 하는,
그 마음이 바로
식심인 것이며, 욕심인 것을….
이런 경지에 있는 무사인은
내가 스스로 그려낸 그림에 속아
그 그림을 거두지도 않고 흩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완전한 자유인이 되어
내가 그린 그림마저,
어떤 그림에도 걸림 없이
그렸다
지웠다
펼치고
누리고 함이 자유롭다.
하고 싶으면 하고,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으면서,
다 내 마음의 그림 따라,
호수에 그림자가 드리워도
그 자취를 남기지 않듯이,
시절인연을 보냄으로
“거두지도 않고 흩지도 않은 채 성색을 꿰뚫어
아무 걸림이 없으니
이런 사람을 도인道人이라 하는 것이다”
선악 · 시비 그 어느 것도 쓰지 않으며,
한 법도 애착하지 않고,
한 법도 버리지 않으니
이를
대승인大乘人이라 한다.
선악이니 시비니 법이니 하는
내 마음에 나투는 이 모두가
스스로 그린 그림이며,
다 나의 일이니
여기에 다시
어떤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 있겠는가.
그래서 이런 경지에 든
그 사람을 일러
대승인大乘人이라 하고,
법을 설하면 이것을
일승법一乘法이라 하고,
마음을 들어 설하면
일심법一心法이라 하고,
보살행을 하면
대승보살大乘菩薩이라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보면
대승불교大乘佛敎가 되는 것이다.
법이 원래 없음을 깨치는 것을
법을 얻었다 하며,
‘나’라고 하는
진정한 ‘나’가 없음을 아는 것을
‘참나’를 찾았다 한다.
모든 행이 진정
그 실성이 없음을 알고 행함을
무위행이라 하고,
어디에도 걸림 없이 벗어남을
해탈인이라 하고,
모든 것이
마음이 그려낸
공화(空華: 허공꽃)인 줄 아는 것을
도를 얻었다 함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니 모든 것이 다 그 실성이 없으며,
모든 행이 그 실성이 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마저 필요가 없이
다 벗어나 버리면 모든 것은 이제
‘있는 그대로 완전한 자유’를
이루는 것이다.
이 모든 상대법은 그 실성이 없다.
그러나 그 실성이 없는 양변이
서로 융합하여 모든 차별상을 도출하여
있는 그대로 완전한 평등을 나투는 것이다.
전부 다
명색名色인 것이며,
지금 나타난 진여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지,
그 명색은
‘지금’을 떠나
한 개도 나툴 수 없는 말과 글이며,
그 이름을 붙이는
내 마음의 소현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내가 붙인 이름에
내가 속을 필요는 더욱 없는 것이다.
그럼으로 부질없다 하는 것이지,
어찌
있는 그대로 펼쳐진 세계가
없다고 할 것인가.
그래서 조주스님 시절에
앞마당에는 잣나무가 서 있던 것이고,
동산스님 몸에
삼베옷이 입혀졌던 것이며,
유마거사가 비아리성에서
입을 다물었던 것이며,
달마대사가 벽을 보고
아무 말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그대로 진실여상한
불립문자不立文字이며,
언어도단言語到斷
심행멸처心行滅處이어서,
선가에서 말하는
근본 대의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알아야
진정한 부처님의 지혜가 된다.
시비나 미추,
옳은 이치다 그른 이치다 하는
온갖 알음알이와 망정이 다하면
얽어맬 수 없어서,
어딜 가나
명색에 얽매여서
찾고 구하고 행하고 말하고 뜻을 굴리고
형상에 얽매이게 되는 것이지,
그 무엇이 있어
찾을 게 있고 구할 게 있겠는가.
부디
모든 이치이든
법이든
나이든
형상이든
다 일어나 얽히면
병이 되고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니,
이 알음알이[知解]만
부리지 않는다면,
원숭이가 재주부리다 나무에서
떨어져 죽지는 않았을 것이며,
먹을 것에 취해
주인이라 섬기다 그 주인에게 잡아먹히는
저 축생이 되지는 않을 것이며,
내 것이다, 네 것이다 서로 다투어
지옥고를 받는
저 아수라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 스스로 세운 심법계에
굳이 세우려면 불국토를 세워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
저 지옥불에서 헤매이는
중생부처님을 실어다 나르는 땟목이 된다면
이는 바로
도인이며,
주인이며,
해탈인이며,
자유인이며,
대승인이며,
그대가 그린
한 불국토의 주인인 붓다가 될 것이다.
백장록 강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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