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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 아름다움은 실은 형체가 없는 것이다. 가장 지극한 아름다움은 허공이니, 허공 속에 빛나는 본성이야말로 조물주님께서 지으신 아름다움의 결정이니라. 그 아름다움을 향하는 인간의 마음이 바로누구나 가지고 있는 신성神性이며 그것을 닦아 본래의 빛남을 드러내는 것이 깨달음이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추구함은 본디본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생래적인 바람에서였거늘 물질주의가 팽배하다 보니 이렇듯왜곡된 미가 마치 본연의 미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구나. 미란 겉을 닦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야.안에서 빛이 퍼져 나오듯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향기가 느껴지듯그렇게 깊이 숨은 아름다움이 저절로 드러날 때진정 아름다움이 귀해지느니라. 사랑의 아름다움 또한 그러하니라.사랑이 겉에 있고 얕으면 금방 보이고,당기는 힘이 .. 더보기
‘나’가 없으면 근심도 없다 ○ (사람들은) 총애를 얻거나 굴욕을 당하면 깜짝 놀란 듯이 되고 寵辱若驚 총욕약경○ 큰 근심을 마치 제 몸처럼 소중히 여긴다.□ 근심을 버릴 수 없어 마음으로 붙들고 씨름한다. 貴大患若身 귀대환약신 ○ 총애와 굴욕에 흠칫 놀란 듯한 것은 어째서인가? 何謂寵辱若驚 하위총욕약경○ 총애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예뻐하는 것이니□ 총애는 남을 밟고 올라 선 느낌을 갖게 한다. 寵爲下 총위하○ 총애를 얻어도(내심 당황하거나 기뻐서) 놀라는 것 같고 得之若驚 득지약경○ 잃어도(내심 섭섭하고 기가 차서) 놀라는 것 같다. 失之若驚 실지약경 ○ 총애와 굴욕에 놀란.. 더보기
가장 깊은 본성 우리는 자신이 무엇인지를 실제로 깨닫기 전에, 자신이 무엇이 아닌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근거 없는 가정들이 탐구 과정 전체에 계속해서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뺄셈의 길’이라 부를 수 있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이것을 ‘비아 네가티바(Via Negativa)’, 즉 ‘부정의 길’이라고 불렀다. 힌두교 전통의 베단타(Vedanta)에서는 이것을 ‘네티-네티(neti-neti)’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는 뜻이다.이것들은 모두 뺄셈의 길이며, 우리 자신이 무엇이 아닌지를 알게 됨으로써 우리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방법이다.우리는 자신이 누구라고 하는 가정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 길은 이런 가정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리 모두.. 더보기
삶은 하나의 움직임이다. 삶은 기이한 움직임입니다. 어느 때는 시끄럽고, 어느 때는 난폭하고, 어느 때는 사납습니다. 어느 때는 달콤하고, 어느 때는 부드럽고, 어느 때는 깃털처럼 가볍습니다. 어느 때는 세차게 노호하고, 어느 때는 낮은 소리로 속삭이지만, 그것은 항상 움직입니다. 그런데 그 움직임의 중심에는 기원도 없고, 기준점도 없고, 중심도 없으며, 진실을 말하자면, ‘핵심’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진실은 결코 말해질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말들은 말해질 수 없는 진실을 말하려고 시도하지만, 말 자체가 그 무한한 움직임의, 그 표현할 수 없는 살아 있음의 또 다른 일부일 뿐입니다. 그 살아 있음은 모든 것에 활기를 불어넣고, 모든 것을 움직이며, 자기의 전체성 안에서 모든 것입니다. 삶은 하나의 움.. 더보기
모든 것의 근원 현재의 세계로부터 달아나려고 애쓸 때, 그 세계는 우리 곁을 ‘빠르게 스쳐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해서 영원한 현재는 가두어지고 압축되고 한정된다. 그것은 한편으론 우리가 지나쳐온 모든 과거경험과 다른 한편으론 우리가 뛰어들려고 애쓰는 모든 미래의 순간들에 의해 샌드위치가 되고 만다. 따라서 달아나는 것은 이전과 이후, ‘과거로부터’ 벗어날 출발점과 ‘미래를 향해’ 들어갈 종착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의 현재는 움직임 그 자체로, 조용한 달아남으로 전락한다. 매 순간들이 오직 스쳐 지나간다. 이와 같이 모든 측면에서 볼 때, 달아나는 것은 현재경험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것이며 스스로를 시간, 역사, 운명, 죽음에 투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근원적 저항이다. 모든 경험을 하나.. 더보기
본질적인 자기가 드러날 때 전통적으로 깨달음이라고 불리는 것은 우리 자신의 진화나 발전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순히 (경험의 내용에 관계없이) 모든 경험의 중심에 있는 참된 자기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그리고 이미 참된 자기이지만, 그동안 경험의 소란으로 인해 그것을 간과했습니다. ‘드러남(revelation)’이라는 단어는 고스란히 ‘드러나다’라는 뜻의 라틴어 revelare에서 유래했습니다. 깨달음이란 단순히 우리의 본질적인 존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우리가 충분히 오래 명상하거나 충분히 열심히 수행하면, 또는 어떤 스승이나 전통을 따르는 대신에 다른 스승이나 전통을 따르면 우리 존재가 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참된 본성이 본래 평화롭고 조건 없이 충족된 앎임을 알아보는 것은 .. 더보기
우리의 본질적인 존재 ‘나 자신’이라는 느낌은 우리가 경험의 모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통과할 수 있는 마음속 입구입니다. 구름 낀 하늘 아래 풍경을 담은 수채화를 보고 있는데, 멀리 있는 구름 중 햇빛을 받아 유난히 밝은 구름이 눈에 들어온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곳은 화가가 수채 물감을 칠하지 않은 유일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멀리서 보면 이 흰색 부분은 그림 속 물체, 구름 한 점, 여러 물체 중 하나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물감은 없고 흰 종이만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이라는 느낌, 또는 ‘나는 있다(I am)’라는 앎은 경험이라는 그림 속 작은 흰 종이 부분입니다. 그것은 경험 속 하나의 대상(많은 대상 가운데 하나)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 더보기
생각의 실체를 아는 사람 보통 우리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라고 말한다. 맞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생각은 일렬로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병렬로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매 순간 한 가지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 자기가 이것저것 여러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한다고 생각한다면 잘 살펴보라. 정말 이것저것 여러 생각을 동시에 하는지, 아니면 이런저런 생각을 빠르게 왔다 갔다 하기에 동시에 생각하는 것처럼 보일 뿐인지. 생각이 일어나는 방식은 마치 컴퓨터의 CPU 같아 보인다. 컴퓨터를 보면 많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계가 돌아가고 알림이 울리고 동시에 영상도 본다. 정말 많은 일을 동시에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