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선문禪門

불변하는 의식 진정한 이해의 새벽이 밝아오면, 우리는 우리의 본성인 밝고 광대한 의식이라는 달콤한 과실을 마침내 맛보게 될 것입니다. 자기 인생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생각하는 일을 완전히 접으세요. 내가 믿거나 생각하는 대로 될지 내다보려 하지 마세요. 단지 삶이 펼쳐지고 있는 지금 여기에 있으세요. 몸-마음 수준의 경험은 항상 그것을 담당해왔던 무언가가 계속 맡아줄 겁니다.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우리는 생명력 그 자체가 몸-마음의 작용을 일으키는 힘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지요. 의식은 몸 안에 존재하며 생명을 유지시키는 동시에 그 모든 변화를 초연하게 지켜봅니다. 이제 여러분은 우리가 그동안 마음과 에고를 지나치게 중요시해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진리와 사랑이 모든 것을 .. 더보기
무아와 진아는 결국 같은 상태다. 생각하고 움직이는 이것은 ‘나’라고 착각된 몸 마음의 작용현상에 불과할 뿐 언제나 고요한 ‘참나’는 움직인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세상에 드러난 몸 마음을 비롯한 모든 현상계의 그 어떤 변화에도 ‘참나’는 물들지 않으므로 절대로 ‘선악’에 영향받지 않는다. 깨달음은 지혜의 빛을 가리고 있는 개체적 자아라는 커튼이 사라졌을 때 컴컴했던 무지가 지혜의 빛으로 하나되는 것이다. 깨달음이 드러나는 것일 뿐 어떤 개체가 깨닫는 것이 결코 아니다. 부처, 성자, 깨달은 사람은 없다. 자기가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착각이다. 깨닫기 전과 깨달은 후에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몸 마음이 나라고 생각했던 착각만 사라졌을 뿐이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신이 행위자라는 생각만 없으면 고통은 없다. 깨.. 더보기
자신의 본모습 수용적이 되면 기분 좋은 느긋함이 생긴다. ‘내가 알지’라는 태도를 버리게 된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기운을 뺄 필요가 없다. 벌어지는 일에 관여하려는 노력을 중단하고,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성격과 정체성으로 집착하던 것을 내려놓는다. 스스로 생각하는 모습이나 해야 될 일에서 벗어나 본모습을 드러낸다. 방어막을 치지 않으면 순수하게 수용해서 내면의 안내에 귀를 기울이려 한다. 또 수용하는 동안에도 나타나는 익숙한 습관과 성향을 끈질기다고 느낀다. 마음으로, 몸의 모든 세포로, 신뢰하는 가장 깊은 내면으로 경청하는 것과 비슷하다. 모든 것–자신을 세상과 분리된 사람으로 규정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 할 때 수용하게 된다. 반복적인 사고 패턴, 습관적인 고민, 욕망, 두려움과 투사, .. 더보기
삶을 순리에 맡기라 우리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발견하게 되면 문제가 사라질 뿐만 아니라 문제를 ‘가지고’ 있는 듯 보이는 그 당사자도 사라집니다. 이것은 진리탐구에서 매우 중요한 요점입니다. 자신을 개인이라고 강하게 믿고 있다면 이런 식의 바라봄은 그저 여러분을 짜증 나게 만들 것입니다. 이렇게 항의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지요.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죠? 지금 제 문제를 아예 다루려 하지도 않고 있잖아요!” 네, 저는 여러분의 문제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 문제는 물론이고 여러분 자신조차 실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개인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순수한 인식이며 순수한 의식입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도 말이지요. 좋은 소식은, 우리가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깨닫기 위해.. 더보기
우리 존재의 바탕 좌선은 사람들에게 좋은 것이다. 내 경험에 따르면, 20분이든 45분이든 매일 고요히 앉아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더 오래 앉아 있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 하루에 한 시간씩 앉아 있고 싶을 수도 있고, 하루에 두 시간씩 앉아 있고 싶을 수도 있다. 그것은 당신이 얼마나 길게 하고 싶은지에 달려 있다. 머리가 하고 싶은 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하고 싶은 대로 따르면 된다. 그런데 내가 말하는 명상은 단지 특정한 자세로 앉아서 행하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명상은 살면서, 생활하면서 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앉아 있을 때만 명상하는 법을 배운다면, 앉아 있을 때 아무리 깊은 명상을 한다고 해도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루에 세 시간씩 앉아서 명상을 한다 해도, 앉아 있지 않.. 더보기
우리가 알아차림 자체 대개 우리는 무의식중에 “내가 알아차린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아차리는 사람이며, 알아차림은 나에게 속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알아차리고 있는 ‘나’라는 어떤 개인이 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추정을 명상하듯, 고요히, 단순하게 조사해 보면, 알아차림은 있지만, 알아차리고 있는 ‘나’ 개인을 실제로 발견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나’라는 개인이 알아차리고 있다는 가정은 마음이 배워 갖게 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당신이 내면으로 방향을 바꾸어, 누가 알아차리고 있는지, 무엇이 알아차리고 있는지를 찾아본다면, ‘그것’이라는 개체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저 더 많은 것을 알아차릴 뿐이다. 알아차리고 있는 ‘나’ 개인은 없다. 이런 식으.. 더보기
당신이 전체라는 통찰 깨어남을 체험할 때 우리는 개인적인 자유를 발견합니다. 개인적인 자유는 이제까지 일어난 모든 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것은 정체성으로부터의 자유인데, 정체성은 우리를 몸과 마음, 기억, 그리고 우리가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모든 생각으로 한정합니다. 개인적인 자유 속에 있을 때 우리는 “나는 자유롭다.” 고 느낍니다. “나는”은 개인적인 것이라는 냄새를 풍깁니다. 이 지점에서는 자유가 “나는”과 연관이 있지만, 나중에는 “나는”을 넘어설 것입니다. 당신이 개인적인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에 더 이상 매혹되지 않게 되면, 개인적이라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가슴속에서 시작되는 이 사랑은 이전에 경험했던 그 어떤 것보다 훨씬 큰 무언가를 추구합니다. 그.. 더보기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직접 경험만을 참조하면서,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 나의 삶에 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 자신과 분리되거나 떨어질 수 없는,    평생 나와 함께하는    그 하나는 무엇인가? ” 생각, 느낌, 감각, 지각 등 모든 범위의 경험을 떠올리며, 그 하나하나에게 당신의 삶 내내 늘 있었는지 물어보십시오. 우리는 경험에 연속성이 있고, 경험에 연속성을 주는 어떤 것이 모든 경험 내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생각은 분명히 그것이 아닙니다.  생각들은 때때로 끊기기 때문입니다. 생각들은 오고 갑니다. 느낌과 감각도 분명히 그것이 아닙니다. 오고 가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모습, 소리, 맛, 감촉, 냄새와 같은 지각도 아닙니다. 이것들도 생각, 느낌, 감각처럼 일어나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