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무일물입니다.
도자기를 부수어 흙가루가 되었다 해도, 그 흙가루를 도자기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인생이 찰나 찰나로 이루어져 있다 해도 그 찰나 찰나를 인생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도자기를 이루었던 흙가루가 모습이 없듯이 우리의 삶을 이루는 찰나 찰나도 그 흔적이 없습니다.
시간적, 공간적 우리 인생을 채우고 있는 본바탕은
실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저 텅 빈 허공과도 같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또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 텅 빈 허공위에 수많은 인연이 만나서 어떤 삶을 만들고 삶을 또 존재케 합니다. 그러나 본 바탕이 허공이기에 그 어떤
삶이라는 것도 허공처럼 그림자만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화내고, 욕심내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오욕칠정이 모두다 허공 같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우리네 인생을 시간으로 쪼개어 말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웃음도 허공이요.
화내는 것도 허공이요.
신문보고,
잠자는 시간도 허공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무엇을 소유하고, 누구와 관계를 맺고, 무엇을 누리면서 살아간다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시간과 공간속에 우리의 삶이 채워졌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냉정하게 현상을 지켜보면 땅을 소유하고, 주택을 소유하고, 무엇을 소유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들을 쪼개어 보면 허공위의 그림자입니다.
이야기가 왜곡됩니다만, 설령 내가 가지고 있는 소유가 허공위에 그림자가 아니더라도, 어떤 땅을 소유했다는 것은 잠시 내 마음대로 그 땅을 사용한다는 것이지 결코 땅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땅은 언제나 그대로 있을 뿐입니다. 땅은 그대로 있는데 단지 등기부등본에 내 이름이 적혀 있고 그 땅을 자유롭게 사용할 권한이 있을 뿐입니다. 땅 뿐 만아니라, 주택도 마찬가지이고, 주변에 가지고 있는 물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잠시 사용할 권한이 있을 뿐
소유한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녀가 결혼하면 ‘너는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삽니다. 그래서 상대가 자기의 범위에 있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하고, 자기 소유로 하고자 싸움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소유했다는 생각을 하고 자기 자식들 까지도 소유했다는 착각을 하고 삽니다. 그래서 아들이나 딸이나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즘 뉴스에 심심치 않게 나오는 아동학대가 그렇고 체벌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들이나 딸들이 자기와 별개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떤 식이든 소유되지 않습니다.
소유란 없습니다.
내 몸도 내가 아닌 지수화풍의 인연으로 생겨 소유를 생각할 수 없는데, 땅이니, 집이니, 사람과의 관계는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소유라는 말 자체가 틀린 말입니다.
본래 무일물입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법신의 응현으로 인해 스크린에 비친 영화처럼 잠깐 스쳐가는 그림자일 뿐입니다. 찰나찰나 지금 여기만 존재합니다. 과거의 우주는 없습니다. 미래의 우주도 없습니다. 때문에 지금의 이 우주는 그림자인 것입니다.
모든 것이 본래 무일물일 따름입니다.
우리네 삶이 이처럼 그림자 같은 데에도 그 그림자를 그림자로 보지 못하고,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욕심을 내고, 화를 내고 두려워하고 그로인하여 윤회의 사슬을 끊지 못하고 삼계를 돌아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菩提本無樹 보리본무수
明鏡亦非臺 명경역비대
本來無一物 본래무일물
何處若塵埃 하처약진애
보리에 본디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가 없네
본래 한물건도 없는 것인데
어디에 때가 끼고 먼지가 일 것 인가
-혜능선사 게송
소유란 없습니다. 본래 무일물입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욕심을 내고, 화를 내며 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흔들림 속에 고요함이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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