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한 생각
선지식이여!
세인들이 입으로는 하루 종일 반야를 염(念)하되
제 성품이 반야인 줄은 알지 못하는 것이
마치 밥을 말하되 배는 부르지 않는 것과 같나니,
입으로야 공을 오로지 말해보나
일만 겁을 지낼지라도
성품은 도리어 못 보리니
종내 이익 됨이 없으리로다.
일만 겁을 그렇듯 쉽사리 지낸다니 참 이상한 일이다.
성품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 많은 세월을 알았을까?
겁(劫)이라니 오지 않고 가지 않으매
당연하고 당연한 일이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겁을
위음왕(威音王) 이전에 보내었다.
선지식이여!
마하반야바라밀이라 함은 범어이니,
이는 모름지기
큰-지혜로-저-언덕에-다다름이라는 말이라.
마음이 행할지언정 입이 염하는데 있지 않나니
입으로 염하고 마음으로 행하지 않은 즉
꼭두각시요 허깨비며 이슬이요 번갯불 같지만
입이 염하여 마음이 행한다면 마음과 입이 곧 상응하매
본래 부처의 성품이라,
이 성품 여의어 다른 부처 없느니라.
한 중이 운문화상에게 묻기를,
초불월조(超佛越祖)하는 법문 여쭈니,
운문이 즉시 이르되,
“호병(胡餠)이니라” 하였다.
호떡 하나 건네어 일체 불조(佛祖)를 다 건네어 주었으니 입맛을 다셔가며 씹고 또 씹으나 아는 이는 없다.
큰 지혜와 저 언덕이 어찌 이렇듯 멀고도 가까운가?
가깝기로는 한발도 움직일 필요 없고
멀기로는 산수비유가 모두 그 하나도 감당하지 못하니라.
말은 2치 붉은 혀끝에서 나오나
두 입술에 가려 있느니라.
무엇을 ‘마하’라 이르는가?
마하라 함은 ‘크다’는 말이니,
심량(心量)이 허공 같이 크고 넓어 그치는 곳이 없고,
모나거나 둥글지도, 크거나 작지도 않으며,
푸르거나 누렇거나 붉거나 희지도 않으며,
위 아래도 없고 길고 짧음도 없으며,
성내거나 기뻐하지도 않으며,
옳다 하지도 그르다 하지도 않으며,
선하다 할 수도 없고 악하다 할 수도 없으며,
첫 머리와 꼬리 끝이랄 것도 없어서
모든 부처님 국토가 다 허공과 같으니라.
하나를 깨달아 얻으면 꼭 그만큼의 한 부처님이 계시니 얻는 대로 버리는 대로 모두 불찰토(佛刹土)라 이른다. 항하의 모래 수 같은 한없는 부처의 땅이 있는 것이니 모두
그대의 한 생각 생기처(生起處)가
곧 무량겁(無量劫)이다.
앞과 뒤가 모두 끊기니
허공에 시작과 끝이 없고
이미 끝이 없으므로 생각하여 얻음이 없다.
생각한다는 것은
벽과 울을 쳐 안팎을 나눔이요,
본체가 허령(虛靈)하여
적적담박(寂寂淡泊)하다는 것이다.
세인의 묘한 성품도 본래 빈 까닭에
한 가지 법인들 가히 얻을 것이 없나니,
자성이 참으로 비었음이 또한 이와 같으니라.
선지식이여!
내가 공(空)이라고 설함을 듣고서
문득 공에 집착하지 말 것이니
제일 먼저 공에 집착하여서는 아니 되리라.
만일 마음을 공하게 하여 고요히 앉아 있게 되면
곧 무기공(無記空)에 집착하게 되리라.
칼이냐? 멍멍한 나른함이 춘몽에 기대었다.
이상한 일이다.
공부가 진전을 본다 여길 때이면 더욱 그렇다.
고요함은 제 마음에 떨어진 의식의 낙엽 같다.
텅 빈 방에 앉으면
눈과 귀가 되레 채워 넣음을 좋아하고
눈과 귀를 비우면
방 안에 무엇 있음이 스스로 고요하다.
대개 집착이라 함은
언설(言說)을 비워 얻음인 줄 알기 때문이니,
문득 언설(言說) 자체를 돌이켜보아
제 성품을 비추면 다름이 없다.
선지식이여!
세상의 허공이
능히 만물과 형상들을 머금고 있나니
해와 달과 별자리, 산하와 대지며
샘물, 시내와 계곡을 끼고 도는 물줄기,
풀과 나무, 그리고 숲, 악인과 선인, 악법과 선법,
천당, 지옥 등
일체 대해(大海)와 수미산이 다 허공 속이니,
세인의 성품 공함도 다시 이와 같으니라.
읽으면 그러하나 눈에서는 생소하다.
허공을 보지 못하듯,
해와 달이 있는 줄은 알지만 머리로만 본다.
귀로 들은 것은 이미 밝음과 어두움이요,
시냇물은 눈에서 굽이쳐 흐르는 관광 상품이다.
저 육조 스님은
공연한 걱정거리 만들어
허공을 참으로 채워 빈틈을 남기지 않았으니
수미산과 대해가 자리를 비우고도
생각으로 가득 넘친다.
무엇이 그대의 본래 얼굴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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