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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

그대와 인연

무엇과 인연하는가?



천태덕소 국사는 천태지자 대사의 후신이다. 나이가 15세 때 인도에서 오신 어떤 스님이 보고는 애써 출가하게 하였다. 당나라 동광 연중에 서주에 나아가서 투자 암주를 친견하고 다음에는 용아소산 화상을 친견하였다. 

 

이처럼 참례한 선지식이 무려 54명이었다. 그러나 모두 불법의 인연이 아니라서 임천에 이르러 정혜 선사를 뵙고는 다만, 대중을 따라서 지냈을 뿐이고 아무것도 참문하지 않았다.

 

어떤 스님이 법안 선사에게 물었다.

 

“12시 중에 어떻게 하여야, 만 가지 인연을 한꺼번에 쉴 수 있습니까?”

 

법안 선사가 말하였다.

 

“공이 그대와 인연이 되는가? 색이 그대와 인연이 되는가? 공이 그대와 인연이 된다면 공은 본래 인연이 없는 것이요, 색이 그대와 인연이 된다면 색과 마음은 둘이 아니니, 일상에 과연 무슨 물건이 그대와 인연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덕소 국사가 듣고는 놀라고 당황하여 이상하게 여겼다.



天台德韶國師者 智者大師 後身 年 十五 有梵僧見之 勉令出家 唐同光中 詣舒州 見投子菴主 次謁龍牙疎山 如是歷叅 凡五十四人 皆法緣 不契 至臨川 謁淨惠 但隨衆而已 無所咨叅 有僧問法眼曰十二時中 如何得頓息萬緣去 眼云 空與汝 爲緣耶 色與汝 爲緣耶 言空爲緣 則空本無緣 言色爲緣 則色心 不二 日用 果何物 爲汝緣乎 韶聞 悚然異之.

 

  

강설

 

천태덕소(天台德韶, 891~972) 국사는 중국의 처주(處州) 용천(龍泉) 출신으로서 성은 진(陳)씨이다. 어머니 황(黃)씨의 꿈에 흰 광채가 몸에 비치는 것을 보고 태기가 있었으며, 태어난 뒤에는 기이한 일이 많았다.

 

15세 때 인도의 어떤 스님이 출가하기를 권하므로 17세에 고향의 귀주사(歸州寺)에 출가하여 법을 익히다가 18세에 신주 개원사(開元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54명의 당대 선지식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으나 법의 인연을 만나지 못하다가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 선사를 만나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으며, 법안종의 종사로서 영명연수 선사와 같은 훌륭한 제자를 두었다.

 

『직지』에서 인용한 내용은 법안 선사가 다른 스님에게 일러주는 법어를 옆에서 듣고 생각이 달라진 내용이다. 

 

모든 사람은 하루 종일 주변의 온갖 인연들과 얽히고설키면서 살아간다. 

 

어떤 스님이 그 많은 인연을 한꺼번에 다 쉬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를 물었다. 법안 선사의 견해로는 

 

“그 누구도 세상사와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인연을 맺으려고 하여도 맺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특별한 사람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본래 인연을 맺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분석하여 가르친 내용이 이 단락의 법어이다.

 

사람들은 흔히 사람과 인연을 맺고 물질과 인연을 맺고 명예와 재산과 인연을 맺고 산다고 여긴다. 

 

그러나 좀 깊이 파고들면 본래부터 인연을 맺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법안 선사는 

 

“공이 그대와 인연이 되는가? 색이 그대와 인연이 되는가? 공이 그대와 인연이 된다면 공은 본래 인연이 없는 것이요, 색이 그대와 인연이 된다면 색과 마음은 둘이 아니니, 일상에 과연 무슨 물건이 그대에게 인연이 되겠는가?”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는 허상에 사로잡혀서 살아가고 있다. 

 

그 모든 것이 존재한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물질도 재산도 명예도 사랑도 미움도 모두가 허상이요, 공한 것인데 

 

그것들이 분명히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므로 그것들과 인연을 깊이 맺고 심한 경우 목숨을 걸고 살아간다. 그러나 보라. 사람과 재산이 있는가? 명예와 목숨이 있는가? 사랑과 미움이 있는가? 그 무엇이 있는가?

 

참으로 세상사 인생사 그 모두가 꿈이요, 환영이요, 헛것인 것을 무엇 때문에 수고로이 붙들고 집착하고 애원하겠는가? 

 

실로 얻었느니 잃었느니 옳으니 그르니 성공이니 실패니 하는 것이 다 부질없는 일이다.

 

 

     직지 강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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