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인 것은 반드시 흩어진다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앞절의 심반야바라밀다(深般若波羅蜜多)를 행(行)하는 때가 이 조견(照見)에 걸려 있습니다.
이때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은 시간적인 점, 즉 시점(時點)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심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는 ‘어디서나’라고 하는 장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라고 하는 시간과 공간을 포괄한 의미에서 시(時)·공(空)을 초월한 영원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의 조견(照見)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은 오온(五蘊)이라고 하는 말이 나옵니다.
온(蘊)은 스칸다프의 역어로써 ‘활동을 하면서 모여 있는 것’이란 뜻입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각각 독자적인 활동을 함과 동시에 한 곳에 모여서 임시로 쌓아 올린 가적(假籍) 상태에 지나지 않는 공(空)적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인간을 정신과 육체 둘로 나눌 때, 육체를 색(色)이라고 하고 정신은 수(受)·상(想)·행(行)·식(識)의 네 가지가 모여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수(受)는 감각 감정, 상(想)은 개념입니다.
길고 짧고, 크고 작고, 괴롭고 즐겁다는 것은 모두 마음속의 느낌을 떠올려서 알아차리는 작용입니다. 행(行)은 의지의 작용이며 의지활동을 가리킵니다. 식(識)은 대상을 분석하거나 분류해서 인식하는 작용이므로 지식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각각 나름대로의 활동을 하면서 또한 한 곳에 모임으로써 형성되는 것이 인간을 비롯한,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온(五蘊)은 존재하는 것, 실존이며 현실입니다.
따라서 ‘오온(五蘊)이 모두 공(空)’이라고 하면 존재도 모두
공(空)’
이라는 뜻이 됩니다.
얼핏 보면 존재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저 그렇게 보일 뿐이지, 여기서 말한 다섯 가지의 것은 한 파트가 되어 모임으로써 합세되어 있기 때문에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모였기 때문에 반드시 흩어져 가는 것이며, 고로 공(空)이 아닌 존재는 하나도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공(空)이다’
여기서는 공(空)이 갖는 의미를 생(生)과 사(死)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인생이라는 삶을 살아가다 보면 뜻하지 않은 불행을 만나기도 합니다. 만날 때 헤어질 것을 예견해야 하듯 헤어질 때에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해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육체는 세상을 떠나도 정신만은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조견(照見)입니다.
조견의 원어를 번역한 뜻은 ‘모든 것을 완전히 꿰뚫어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꿰뚫어 봄과 동시에 지혜의 빛으로 밝게 비추어 보여주는 것입니다.
쓸쓸하고 허전한 사실을 꿰뚫어 보는 것이 제1의 렌즈이고 그 쓸쓸하고 허전한 허무함에서 무언가 진실한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이 제2의 렌즈입니다.
‘조고각하(照顧脚荷)’라는 말이 있습니다. 발밑을 비추어 돌이켜 보라는 뜻으로써 불교에서는 ‘자기 자신을 돌이켜 비추어 보라, 즉 부처의 지혜의 빛이 비추어 주는 가운데 자신을 밝게 응시하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비추어 보여 지고 있음을 앎과 동시에 일체의 모든 것을 비추어 보며 가는 반야의 지혜를 깨닫게 하는 것이 자신과 다른 사람이 구원을 받고 구제되어 가는 진리의 길이며 기쁨임을 밝혀서 보여 준 것이
‘조견 오온개공(照見 五蘊皆空)’입니다.
즉, 모든 존재는 공(空)이니 ‘육신과 물질의 욕망에 사로잡히지 아니하는 눈을 뜨라’고 깨우쳐 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세상 어느 곳에서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큐베이터 속에서 태어나자마자 죽는 비극적인 생명도 있습니다. 어린 생명을 앞서 떠나보낸 어떤 부모들은 그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흰 매화나무를 심고 죽은 아기의 영혼 그대로 아기 매화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매년 봄이 되어 새싹이 나면 아기 매화가 나왔다며 기뻐했고 꽃이 피면 아기 매화가 피었다고 하며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어린 아들을 잃은 부모가 윙윙거리며 귀찮게 하는 파리를 잡는 자신의 또 다른 자식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잡지 말라, 파리가 팔다리를 비비며 살려달라고 빌고 있지 않니?”
말을 못하는 식물에서부터 파리와 같은 미물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소중함을 절감한 것입니다.
누구나 생명의 허무함을 체험하고 나면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평화롭게 살고 있는 생명체나 생물을 함부로 다루는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오온개공(五蘊皆空)-존재하는 모든 것이 모두 공(空)이라는 가르침을 떠올릴 수 있게 되는 말입니다. 오온개공(五蘊皆空) 임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생명의 존귀함을 뼈 속에 스미도록 느끼게 됩니다.
어린 생명과의 사별에 의해서 그 어린 영혼이 어디에선가 우리의 발밑을 비추어 주고 있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 아기의 영혼 뒤에서 부처의 반야의 지혜의 눈이 지켜보고 있음을 절감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와 같이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커다란 움직임이 우리의 마음속에 묻혀 있는 것입니다.
조견(照見)-그것을 비추어 보는 것이며 빛에 의해서 비추어 보여 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곳에 평안히 쉬는 마음의 평화가 있습니다.
모든 괴로움에서 구원을 받는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며 일체의 고액(苦厄-괴로움)에서 구함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괴로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움 자체는 사실로 있으면서도 그것이 고통스럽지 않게 되는 마음의 평화가 오게 되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반야심경 -송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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