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도 식물도 동물도 알고 있는 일을
우리 인간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인간은
존재하는 방법,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방법,
자기 자신이 되는 방법,
삶이 있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자연에 전념할 때,
즉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은 채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에 온 마음을 둘 때
나는
생각의 감옥에서 한 발짝 걸어 나와
생명과 연결될 수 있다.
그 안에는 모든 자연스러운 것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개미 한 마리에
온 마음을 둔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돌 하나를 지각하고
나의 맑은 마음속에 온전히 두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돌의 실체 중 무언가가 나에게 다가온다.
그 돌이 너무나 고요함을 느끼면서
나도 모르는 새
동일한 고요함이 내 안에서 솟아오른다.
그 돌이
얼마나 존재 안에서 깊이 쉬고 있는지,
얼마나 온전히
돌 자신의 본래 모습과 하나가 되고,
지금 그것이 거하는 장소와
하나가 되어 있는지 느낀다.
그와 함께 나도 내 안으로 깊이 들어가
안식의 장소에 이른다.
자연의 품에서 걷고 쉴 때에는 거기에 온몸과 온 마음을 두어야 자연에 경의를 표할 수 있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바라보라.
귀 기울여 들어보라.
자연에 존재하는 풀 한 포기, 뛰어노는 동물 한 마리가 다 온전히 제 자신으로 존재함을 보라. 인간과는 달리 그들은 제 자신을 둘로 분열시킬 줄 모른다. 그들은 제 자신의 이미지를만들 줄도 모르고 그 이미지를 통해서 삶을 살아가는 법도 모른다. 그러니 이미지를 더 멋지게 꾸미거나 보호하려고 애쓰지도 걱정하지도 않는다. 사슴은 그저 사슴일 뿐이다. 수선화도 그저 수선화일 뿐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제 자신과 하나일 뿐만 아니라
완전한 전 우주와도 하나가 되어 있다.
그들은
우주를 ‘나’와 ‘나머지 존재들’로
갈라놓지 않았기에
제 자신을 분리된 존재로
주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물망처럼 연결된
전체 생명의 일부로 존재한다.
자연을 명상하면 자유로워진다.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는
‘나’로부터 해방된다.
'고요함의 지혜' 중에서
*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은
'나'와 분리되어 저것이 있다는 생각을 벗어나면
전체가 보인다.
나의 본래모습은 어떤 형상도 아니요,
느낌으로도 알 수 없는 근원적인 생명이다.
자연은 '나'를 세우지 않으니
우주와 하나가 되고 전체 생명으로 존재한다.
내가 소리를 듣고 있는 착각에서 나와
소리에 몰입해 보자.
소리가 바로 '나'임을 알아차려라.
그 소리 넘어 존재하는 맑은 마음과 하나가 된다.
내가 알려고 하면 알 수가 없다.
알려고 하는 생각을 내려놓고
조작없이 있는 그대로 맡기면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 처럼
이미 '나'는 자연 그대로이며,
온통 우주와 하나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