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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

헛됨도 없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한다면 수보리야, 실로 법이 있어서 부처님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니니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이 가운데에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느니라.

 

   

 

  해설 |

 

  태풍의 눈은 텅 비어 고요하기 그지없으나

 

  어마어마한 위력의 태풍을 몰고 다니는 것처럼

 

  자성인 본체는 텅 비어 고요하기 그지없으나

 

  희로애락과 삼라만상을 쥐락펴락한다.

 

   

 

무실무허無實無虛,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다는 것이 여래 법의 핵심이다. 

실다움이 없다는 것은 실로 얻을 것이 없는 마음이 

곧 보리를 얻음이라 했는데, 

 

성품은 얻을 것도 없고 구할 것도 없고 찾을 것도 없는 

공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헛됨도 없다 하는 것은 

실다움이 없는 공한 마음의 본체에서 만 가지 작용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나투는 까닭이다.



무실무허를 비유하자면 태풍의 눈과 같다. 태풍의 눈은 텅 비어 고요하기 그지없으나 어마어마한 위력의 태풍을 몰고 다니는 것처럼 자성인 본체는 텅 비어 고요하기 그지없으나 희로애락과 삼라만상을 쥐락펴락한다.



   

 

  야부 |

 

  부유하면 천千 입도 적다고 싫어하고,

 

  가난하면 한 몸도 많다고 한탄한다.

 

   

 

  해설 |

 

  작용할 때는 항하의 모래 수보다 더하고

 

  거두어들이면 하나도 없이 적정하여 흔적이 없다.

 

  만 가지 경계가 만 가지 모습으로 옷을 바꿔 입고 나타나도

 

  한 눈에 척 알아보고,

 

  고요히 태풍의 눈으로 거두어들이면

 

  한 터럭 흔적도 없이 다 쉬어진다.





  야부 |

 

  생애가 꿈과 같고 뜬구름과 같으니

 

  살 길이 아주 없어 육친과 끊어졌도다.

 

  한 쌍의 청백안靑白眼을 얻어서

 

  무한히 왕래하는 사람에게 웃어보이도다.

 

   

 

  해설 |

 

  본래 한 물건도 얻을 것이 없음을 깨달아

 

  마음이 푹 쉬어지니 육근이 청정해졌다.

 

  희고 푸른 지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무한히 왕래하는 경계에 웃어 보인다.

 

  웃음은 꽃이다.

 

  마구니들이 부처님께 활을 쏘고 창과 돌을 던져도

 

  부처님 가까이 오면 모두 꽃으로 화化하여 떨어졌듯이,

 

  무한히 밀려왔다 밀려가는 경계들이

 

  꽃으로 자기의 삶을 장엄한다.

 

 

 

        그대 삶이 경전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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