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감정,
특히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불리는 것은
대부분 분노나 두려움 아니면 분별로부터 비롯된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믿어버릴 때 생겨난다.
감정적인 삶과 지적인 삶은 실제로는 나뉘어 있지 않다.
그것들은 하나다.
감정적인 삶은 무의식 속에 가려 있는 지적인 삶을 드러내준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생각들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무의식적인 생각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이런 경로를 통해서이다.
사람들은 자주 어떤 감정 때문에 괴로워하며 나를 찾아온다. 그것은 두려움이나 분노, 원한, 시기심 등등이다. 나는 그들에게 말해준다. 그 감정을 놓아버리고 싶다면 그 감정 아래에 깔려 있는 세계관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이다. 그 감정이 입이 있다면 무어라고 말할까? 그 감정은 어떠한 신념 구조를 가지고 있을까? 그것은 무엇을 심판하고 있는 걸까?
내가 정말로 묻고 있는 것은,
‘이 사람이 어떻게 감정적으로 분리 상태에 끌려들어가게 되었는가’이다.
무엇을 분리 상태로부터 인식할 때,
우리는 언제나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게끔 되어 있다.
감정적 삶은
우리가 분리로부터
사물을 인식하고 있는 순간을 알려주는
정확하고도 믿음직한 지표다.
분리 속으로 들어설 때는
언제나 어느 정도의 감정적인 갈등을 느낄 수 있고,
이것은 경고신호 역할을 해준다.
감정적인 갈등을 느낄 때마다 다음과 같이 질문해봐야 한다.
“나는 어떠한 경로로 분리 속에 들어가고 있는가?”
“지금 이 순간 이러한 분리, 고립, 방어의 느낌을
유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믿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몸 안에서 재생되고, 감정으로 나타나게끔
내가 만들어낸 가정은 무엇인가?”
이렇게
감정과 생각은 이어져 있다.
이것은 똑같은 하나가 두 가지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둘은 나누어질 수가 없다.
분리를 일으키는 생각은 그 어떤 것도 진실이 아니다.
‘아무개가 감히 내게 그리 말하면 안 되지….’
하지만 그렇게 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마음이 말하자마자 내면에서는 분리를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그야말로 즉각적이다. 우리는 왜 분리를 경험할까?
현실과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분명해졌다. 즉 어떤 이유로든
현실과 다투면 우리는 분리로 들어서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이치이다.
실재란 그저 있는 그대로일 뿐이다.
그것을
분별하거나
비난하거나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한다고 우기는 어떤 생각을 품는 순간,
우리는 분리를 느끼게 된다.
우리들 대부분은 어떤 경우엔 분리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마땅한 일로 배워왔다. 특정한 경우에 자신이나 남의 고통을 당면해서 분리 상태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짓이라고 배워왔다.
그건 마치, 그런 경우에조차 내면의 분리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는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깨달음의 더욱 깊은 영역으로 나아가는
놀랍고도 충격적인 부분이다.
우리는
현실과 다툴 정당한 이유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그 싸움에서 결코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과 다투는 것이야말로 괴로움으로 가는 지름길이며
고통을 자초하는 완벽한 처방전이다.
그보다도 더 나쁜 것은,
우리가 다투는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과 우리가 한데 묶여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그것이 3년 전에 일어난 일이든 어제 아침에 일어난 일이든 간에, 그것과 싸우면 우리는 당장 그 덫에 걸리고 만다. 우리는 똑같은 고통을 끝없이 경험하고 또 경험해오고 있다.
무언가와 다투는 것은
그것을 초월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을 잘 다루어내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를 가둔다.
다투는 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에 묶여버린다.
과거든 현재든 간에, 우리가 참이라고 놓고 다투는 어떤 것에도 근거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의 다툼은
꿈꾸는 상태의 한 조각일 뿐이다.
그것이 꿈꾸는 상태의 한 조각이거니, 하고 입으로만 중얼거린다거나 다른 사람이 그리 말하는 것을 듣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 각자가 스스로 살펴보아야 한다.
분리를 경험할 수밖에 없도록
힘을 휘두르는 그것을 알아차리려면
각자가 자신의 감정적 삶을 잘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자신의 감정을 잘 들여다봄으로써
그것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
또 그것이 진실한지를 의심해봐야 한다. 침묵 속에서 그것을 명상해봐야 한다. 그래서 더 깊은 진실이 드러나도록 해야만 한다.
우리를 갈등 속으로 몰아가는 자가 다름 아닌 ‘나’라는 사실(우리 삶에서 다른 누구도 어떤 상황도 그렇게 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이 감정적 삶이 바로 하나의 ‘입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입구는 우리로 하여금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해주고, 깨어 있는 상태(그 무엇도 바꾸려 들지 않는, 그 자체가 진실에 대한 사랑인 상태)에서 바라보게끔 우리를 맞아들이고 있다.
관건은 이 감정이 과연 분리 상태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의 여부다.
만일 그렇다면 그 감정은 환영에 바탕을 둔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진실하게 질문을 해보아서 그 감정이 분리 상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환영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을 올바로 볼 수 있게 되면
감정을 허용하는 폭이 훨씬 더 넓어지게 된다.
우리는 이제 활짝 열려,
갖가지 감정의 바람(wind)이
심신체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드넓은 공간으로 변한다.
그러니 여기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자유는,
분리로부터 비롯되는 감정으로부터의 자유이다.
깨어남에서 깨달음까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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