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법사가 혜해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깨달음을 얻습니까?’
‘나고 죽는 업을 짓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것이 나고 죽는 업입니까?’
‘깨달음을 구하는 것이 나고 죽는 업이며,
더러운 것을 버리고 깨끗함을 취하는 것이 나고 죽는 업이며,
얻음과 깨우침이 있는 것이 나고 죽는 업이며,
번뇌를 없애려는 것이 나고 죽는 업이다.’
‘어찌 해야 벗어나겠습니까?’
‘본래 속박된 일이 없으니,
해탈을 구할 필요가 없다.
바로 사용하고 바로 행함이 바로 차별 없이 대하는 경지다.’
「傳燈錄」 大珠慧海
번뇌와 깨달음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망상(妄想)이며, 중생이 부처가 되는 길은 멀고 멀 뿐이라는 생각 역시 이원적인 관념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를 이원적인 세계에 묶어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 스스로 ‘나’를 고집함으로써
‘나 아닌 것’을 분리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괴로움 역시 주로 인간관계의 파탄에서 비롯되지만, 그것 또한 내가 만든 것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다르다는 이원적인 생각을 내려놓게 되면,
나를 배신하는 이는 다름 아니라
내가 그에게 씌워놓은
나의 또 다른 모습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를 깨닫지 못하는 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세상을 원망하고 환경을 탓할 것이다.
‘나는 내 평생 불쌍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는 생각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나 이외에 불쌍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
‘나는 일생동안 불의와 맞서 싸운다’는 신념을 떠맡으면,
나는 세상 속에 맞서 싸워야 할 불의를 동시에 창조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도, 내가 못났다는 열등감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진정으로 다스려야 할 것은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나’라는 집착과 그 사실을 모르는 미련함일 뿐이다.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다양한 개념들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리는 일은
우리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며,
또 우리가 잃어버려서 되찾아야 하는 어떤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 속에 존재한다.
일상을 여유롭게 만드는 마음의 기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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