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 존재가 허공을 집으로 삼는다지만
허공은 그 자체 허공이라 부를 수도 없는 까닭에
마음을 집으로 여긴다.
집이라지만 본래 몸이 없는 고로
머물되 머무름이 아니니
마음을 낸다는 것 역시 머무름 없어
그 갈 곳 또한 없다.
이제 저들은 이 하늘 아래 몸 둘 곳이 없는 것이며
제 집이라 숨을 곳도 없게 되었구나!
중생을 구제하는 이가 아니라,
본래 실로 그 중생이 없음을 일깨워 줄 뿐이로다.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껏 상상하게 하라.
있다고 그대가 여기는 그 만큼 존재는
점점 허공에 밀려들고 심연에 빠져들 것이니라.
생각하는 만큼 있으니 항하의 모래알 같고
생각이 일수록 빈자리만 더욱 커지니 허공 같다 이른다.
눈에 보이면 형상이요, 아니 보이면 문득 형상이라
그 본 눈 자체의 형상은 무엇으로 가늠할 터인가?
생각이 있고 없고를 각각 나누어 이르면
하염없이 생각 일으키는 당처만 되물어 반성할 것이니
때문에 갈 곳을 잃고 막히어 닫힐 것이로다.
지각, 감각, 인식 작용들이 생각이라
밖에 존재하는 줄로 아는 것은 그 앎이 허망하여
믿을수록 믿는 내 마음만 믿지 못해 시달릴 뿐이다.
과연 그대의 마음이라면
어찌하여 시달리도록 내버려두는가?
멸하여 건네었다면 이와 같은 멸하여 건넴은
무량하고 무수하며 가없이 많은 중생이 다 멸하여
건넬 중생이 실로 다시없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보살은 ‘나’다, ‘남’이라는 생각,
중생이나, 영원함을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이니라.
아인중생수자는 본래 생각이나 이념이 아니다.
有情은 생각이나 이념을 만들지 못한다.
我, 人 등은 이미 자신의 선험적 覺察(각찰)을 통하여
자신을 즉자적 존재로 規定지으려 할 뿐이다.
위에서 보면 궁성도 개미집이요
아래서 보면 개미집도 궁성이라.
아래로 보아 번뇌 망상이라 핍박하고
위로 보아 보리지혜라 찬탄 志向(지향)한다.
보고자 하면 向方에 시달리고
시달리는 곳에 因果가 嚴重하다.
十方을 다 던지어 인과의 處所를 여의니
일마다 始終이 없어 본 바도 없다.
존재를 삼켜 허공을 뱉아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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