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
어떻게 하면 형체와 자취가 함께 사라질 수 있는가?
답함
조짐과 자취가 본래 없는데, 어째서 없애려 하는가.
물음
이렇다면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시면 뜨겁고 차가움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은데, 크게 깨달아야만 비로소 이 종지에 계합하는 것인가?
답함
나의 이 종문(宗門)에는 미혹하고 깨닫거나 계합하고 계합하지 못하는 도리가 없다. 손을 털어보아도 그대에게 줄 어떤 물건도 없는데, 공연히 수고스럽게 수천 가지 말을 할 뿐이다. 이것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고 어떤 성인도 결정하지 못하며, 대지도 싣지 못하고 허공도 포용할 수 없으니, 도량(度量)이 큰 사람이 아니면 짊어질 수가 없다.
이는 고덕(古德)이 “온 세상에서 짝으로 삼을 사람을 하나도 찾지 못했다.”고 한 말과 같다. 또 “오로지 한 사람만이 조사의 지위를 이을 뿐, 끝내 두 번째 사람이란 없다.”고 하였다. 만약 이 자리에 직접 도달하지 못한다면 설사 현묘하고도 현묘하며 오묘한 중에서도 더욱 오묘한 도리를 말할지라도, 공연히 정신만 수고로울 뿐이다.
만약 방편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칭송하는 문[稱揚門]에서 다른 사람들이 믿고 들어가도록 도와 한평생 곁에서 찬양하더라도 이것은 옳지 못하다. 자기 분상에서 직접 관조할 때 특별히 현묘한 도리를 말하여 한 생각이라도 수승하고 불가사의하다는 알음알이를 일으킨다면 모두 마계(魔界)에 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원각경(圓覺經)』에서
“헛되고 들뜬 마음과 온갖 교묘한 견해로는 원각을 성취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선덕(先德)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얻어도 얻지 못함은 천마(天魔)의 얻음
현묘하고 또 현묘함은 외도의 현묘함
고향 수풀 속에 부모를 내다버리고
노란 나뭇잎을 돈이라 부르도다
백척간두 끝에서 선뜻 손을 놓을지니
앞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다
지금 형체나 언어의 자취나 문채 같은 것들이 생겨난다면 모두 방편문을 집착해 진실한 도에 미혹한 것이니, 저 노란 나뭇잎을 오인해 황금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만약 크게 깨닫는다면 마치 백척간두 끝에서 몸을 던지는 것과 같아서 다시 앞뒤를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이 종경은 일체범부와 성인이 몸과 목숨을 크게 버리는 곳이니, 이 종경에 들어가지 않으면 모두 구경(究竟)이 아니다.
물음 필경에 어떠한가?
답함 필경이랄 것도 없다.
물음
앞에서 “이 종경에 들어가지 않으면 모두 구경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또 “필경이 없다.”고 하는가?
답함
앞에서는 증상만인(增上慢人)을 상대한 것이니, 그들은 얻지 못하고서 얻었다 하고, 허망한 것을 진실이라 오인하며, 전도된 것을 원만하고 영원하다고 집착한다. 이런 망정의 번뇌를 타파하기 위해 방편으로 구경이라 한 것이니, 지금 견성(見性)을 논하면서 어찌 허(虛)와 실(實)을 말하겠는가.
물음 이것으로 밝게 통달한 후에는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답함 누구에게 실천하라고 하는가?
물음 단멸에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답함 오히려 상주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단멸하겠는가.
물음 최후의 한 말씀을 청하노라.
답함
허깨비가 환사(幻士)에게 묻고
골짜기의 메아리가 샘물 소리에 답한다.
나의 종지를 통달하고자 하는가
진흙 소가 물 위로 가는구나
물음
이 『종경록』은 미세한 부분까지 망라하여 이(理)와 사(事)가 원만하고 뚜렷한데, 도를 흠모하는 이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겠는가?
답함
제일의(第一義)에서는 이익도 없고 공덕도 없지만 세속의 문에 나아가면 칭탄할 만한 것이 있는 듯하다. 총괄하면 두 갈래가 있어 초학자를 도울 수 있다.
첫째는 아직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바른 믿음을 성취하게 하니, 일체를 거두어 일념으로 귀결시키고 바깥으로 치달려 구하지 않게 한다.
둘째는 이미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관조하는 힘을 성취하도록 도와 이치와 수행을 견고하게 하고 빨리 보리를 증득하게 한다.
그리하여 걸음마다 보배의 창고에 가는 과정에 지체하지 않게 하고, 순간마다 살바야해(薩婆若海)에 흘러들게 한다. 이는 크고 넓은 수레를 타고 불국토에 이르는 것과 같고, 튼튼한 배를 타고 깨달음의 언덕에 오르는 것과 같다.
명추회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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