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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

마음이면서 몸이다.

마음이면서 몸이다.

 

 

 

몸은 

 

‘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몸이 ‘나’이든 아니든 간에, 사람은 마음과 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곧 사람을 몸이라 하든 마음이라 하든 간에, 어느 한 면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의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이란 

몸이면서 마음이며, 

마음이면서 몸이다. 

 

이것이 올바른 이해다. 

그러나 우리가 ‘나’나 ‘자신’이라고 할 때의 의미는 대개 일방적일 경우에 한정되어 있다. 다시 말해 ‘나’ 또는 ‘자신’이라고 할 때, 우리는 당연히 육체적인 면만을 떠올리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때문에 우리는 여지까지 별 의심 없이 이 몸을 ‘나’라고 생각하면서 ‘나’와 ‘내 것’을 주장해왔지만, 거기에 마음은 있지 않았다. 설령 마음이 있다 해도 그것은 집착으로 덧칠된 껍데기였다.

 

때문에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 몸이면서도 마음이며 마음이면서도 몸인 ‘나’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나’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끝내 동어반복의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말에도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일은 평소의 생각이나 방법으로는 접근하기 어렵다.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려는 노력은 세상에서의 성공이나 출세를 위한 준비로서의 실천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 오히려 세상이 바라고 원하는 출세와 성공이라는 세속적 가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노력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산다는 것은 세상이 요구하는 가치에 매달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소모하는 일이기도 하다. 극단적인 비유이기는 하지만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로봇이라면, 우리의 행동 또한 로봇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이런 표현에 대해서, 그것은 보는 사람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물론 이것도 옳은 말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와 제도에 죽은 듯이 끌려가고 있는 모습이 우리의 삶이라는 데 있다. 

 

 

달팽이 뿔 위의 헛된 명예와 

파리 대가리 같은 작은 이익.

무엇하러 바삐 따지는가.

부디 나를 놓아버리고 

제멋대로 좀 살게 하자.

인생 백 년을 온통 다 취해서 보낸다 해도

삼만 육천 번뿐. 

                    「東坡樂府」 卷上, 滿庭芳

 

 

되돌아보기는 우리 자신을 온전한 삶으로 안내하는 

가장 간단하고도 진솔한 방법이다.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면 

분명 세상만사가 순간순간 변해가며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마음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세상의 사물들 또한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도, 심지어는 



이러한 것들을 알아차리는 

그 무엇도 순간순간 변한다. 



이런 흐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면, 일상생활에서 겪고 있는 작은 괴로움이나 집착은 정말 사소한 일들임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힘들다고 여기는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이와는 달리 ‘나’를 중심으로 하여 ‘나 외의 것’을 나누고 따지다 보면, ‘나’ 외의 모든 것에 대해 항상 관심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마음은 그쪽으로 치우치게 되고, 몸과 마음은 분리되고 만다. 번민으로 밤을 지새우고 나면 밥맛이 없어지는 것처럼, 마음이 근심으로 가득 차 있거나 무언가에 빠져 있으면 우리의 생활은 흐트러지게 된다. 

 

이런 경험들은 누구나 공감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경험들이 오히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괴로움이나 분노의 원인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며, 쉽사리 그런 감정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여유를 얻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되돌아본다는 뜻이다. 물론 이때는 무턱대고 감정을 누르거나 다스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편안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기보다는‘나’와 ‘나 아닌 것’을 구별하면서 괴로움과 분노의 감정들에만 예민하게 반응해왔다. 

 

만약 

분노란 이해가 부족한 데서 오고 

또 아주 쉽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되돌아볼 수 있다면 

우리는 분노와 원한에서 한 걸음 멀어질 수 있을 것이다.

 

되돌아본다는 것은 

끊임없이 끌려다니는 생각의 흐름을 멈추고 

자신을 편안하게 하려는 것이다. 

되돌아보기를 통해 

걱정스럽고 불안한 생각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편안해져 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을 조금씩 늘려서 넓혀나간다면, 

 

과거나 미래의 분노와 불안이 만들어내는 

허상으로부터 벗어나 

우리의 삶 자체가 온전하게 될 것이다. 

 

물결이 호수를 뒤흔드는 동안 물은 맑지 않지만 물결이 가라앉을 때 비로소 그 물이 정화되고 맑아지듯이, 마음속의 분노와 불안이 사라질 때 우리의 정신은 더욱 투명해질 것이다. 

 

 

     깨달음   일상을 여유롭게 만드는 마음의 기술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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