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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

온전한 삶

온전한 삶

마음이 바르다면 계율이 무슨 소용 있으며,

행실이 바르다면 참선이 왜 필요한가.

은혜를 알아 어버이를 섬기고,

믿음으로 서로를 사랑하라.

겸손과 존경으로 위아래 화목하고, 

참으면 나쁜 일들 조용히 사라지네.

진리는 그대 마음에서 찾아야 하거늘,

어찌하여 밖으로만 찾아 헤매나. 

 

                     「六祖壇經」 疑問品

 

 

온전한 삶 그리고 나답게 사는 삶이란 계율을 지키거나 경전을 읽음으로써 느낄 수 있는 일시적인 안도감이 아니다. 그것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활화되는 행동이다. 일상의 사소한 문제들뿐만 아니라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건이나 기회까지 편안함으로 연결되어야 진정으로 그 삶이 온전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일상적인 행위 하나하나가 온전한 마음으로 드러난다면, 그것이 곧 깨달음으로 사는 일이 된다. 온전하게 산다는 것 또한 어떤 특별한 방법이 아니다. 단지 현재 머무는 곳에서 온전한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이다. 

 

거기에는 올바른 규범이라든가 올바른 노력 등의 요구사항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로지 마음을 집중하고 일어나는 현재의 순간을 분별 없이 알아차리는 것일 뿐이다. 

 

거기에는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고, 다른 이의 아픔에도 함께하는 마음이 자라게 된다. 이런 마음으로 삶을 대한다면, 산다는 일 자체가 모두 환희요 충만함일 것이다. 

 

 

자세히 보니,

냉이꽃 피었구나.

생 울타리 옆.  

바쇼(芭蕉)

 

 

보아도 보이지 않는 사람과 보고 느끼며 가는 사람의 길은 같은 길을 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길이 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연기(緣起)로 이루어져 있다. 

 

비록 하나의 작은 들꽃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이치가 함께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에서도 변화하는 존재의 현상을 알 수 있으며,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 하나에서도 우주의 조화를 읽을 수 있다. 



온전한 마음으로 삶을 마주한다면 

거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고 편안함 또한 자리 잡게 된다. 

세상이 변하는 것도 상황이 변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끌려 다니며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이 있을 뿐이다. 

 

 

남해의 법성사(法性寺)에서 인종(忍宗) 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 바람이 불어 깃발이 흔들리자 두 스님이 서로 다투었다. 한 스님은 바람이 움직인다고 했고, 다른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고 했다. 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혜능(慧能)이 한마디 했다.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고 그대들의 마음이다.’  

                                                     『六祖壇經』

 

 

구체적인 현실을 떠나서 존재의 의미를 생각할 수도 없지만, 마음의 본성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않고서는 온전한 삶을 살 수는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뜻대로 산다고 하지만, 사실은 마음의 본성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제멋대로 분별한 여러 가지의 모습에 취해 

 

한바탕 꿈과 같은 삶을 살 뿐이다.  

 

원효(元曉)와 의상이 당나라로 가고자 백제 땅의 서해안 당진에 이르렀으나 중도에 심한 폭우를 만나 길 옆의 토감 사이에 몸을 숨겨 회오리바람과 습기를 피했다. 밤중에 심한 갈증으로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을 손으로 움켜 마셨을 때 맛이 좋았는데, 이튿날 아침에 그 물이 시체가 썩어 고인 것임을 알고 심한 구토를 하였다. 이에 원효는 ‘마음이 생긴 즉 모든 것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니 모든 것이 사라진다(心生卽種種法生 心滅卽種種法滅).’고 읊고는 당나라고 가는 길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갔다. 

                                                           「林間錄」

 

 

원효스님이 깨달았던 이치는 우리 또한 언제 어디서라도 깨달을 수 있다. 마음을 내기에 따라 대상이 전혀 다르게 인식되는 것처럼 세상은 오로지 마음의 작용에 의해 드러나고, 모든 존재 역시 오직 마음으로 인해 다가오거나 멀어져간다. 

 

마음이란 그 자체로는 마음이 아니며 대상으로 인해 마음이 일어난다. 대상 또한 그 자체로는 대상이 아니라 마음으로 인하여 대상이 된다. 이를 이해할 수 있다면 



‘나’는 마음이기도 하지만 

몸이기도 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몸과 마음은 둘이면서 하나요(二而一), 

하나이면서 둘이다(一而二). 

이것이 몸과 마음의 올바른 이해다. 

 

 

「백유경(百諭經)」에서는, 육도(六道)의 윤회 가운데 사람으로 태어나는 인연은 지극히 어렵다고 하였다. 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기도 어렵고, 깨닫고 살기는 더더욱 어렵다고 했다. 

 

세상만사는 오로지 마음 짓기에 달려 있으니, 

어떻게 살 것인가 또한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을 뿐이다. 

 

 

       깨달음   일상을 여유롭게 만드는 마음의 기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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