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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

처음부터 가진 것은 없었다

처음부터 가진 것은 없었다

 

 

 

우리의 생각을 전환시킨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좋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어떤 사안이 발생 했을 때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이 아끼는 어떤 귀중한 물건을 잃어 버렸을 때 ‘그래, 인연이 거기까지야.’라고 생각을 하며 잃어버린 그 물건에 대해 마음을 편하게 가져보려고 노력하지만 머릿속은 그 물건에 대한 생각이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비단 물건에 관한 것만이 아닙니다. 사람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말다툼을 하여 돌아오는 길에 그 사람에 대하여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고 해도 그게 잘 되지않습니다. 설령 내가 잘못했다고 해도 당분간은 그 사람에 대한 원망은 머릿속에서 잘 떠나지 않습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 했다는 거야?’ ‘자기가 좀 나를 이해하면 안 되나?’등등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잊어버리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전환해야지 하는데 막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전환하려고 하면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명상을 통해 그 아픈 마음을 바로 보고 생각을 전환 시키려고 해도 그것도 심했을 경우에는 잘 되지 않습니다. 

 

흔히 다른 사람의 일은 ‘뭐, 그것 가지고 그러냐?’고 가볍게 말을 할지 모르지만 막상 일을 당한 당사자인 경우에는 그 당했던 일들이 쉽게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마치 껌 딱지처럼 머릿속에 달라붙어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이런 사소한 고통과 괴로움은 솔직히 아무것도 아닌지 모릅니다. 절대 절명의 고통도 있고, 죽음을 생각할 만큼의 고통도 있으며, 매일매일 사는 것이 고통인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그런 큰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고통을 당하는 경우 고통을 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사자를 만나 당사자가 겪고 있는 문제를 직접 풀어주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돈을, 사랑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사랑을, 아픔이 있는 곳에는 기쁨을, 실패한 곳에 성공을, 취업이 안 된 사람에게는 취업을 시켜주어야 제대로 된 문제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없는 상황에서는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조금의 위안이 될 수 있는 말은 어쩌면 원론적인 이야기 인지 모르지만 

 

‘우리의 본질을 생각해보자’는 말입니다. 

 

우리의 본질은 ‘처음부터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흔히 쓰이는 말로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이 말을 그냥 간과할게 아니라 깊이 생각해보면 참 의미있는 말이기도 하며,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불교의 핵심을 이루는 말이기도 합니다. 

 

혜능 선사는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하여 ‘한 물건도 없음’을 강조하기도 하였고, 대승기신론의 진여나 체(體), 선불교에서 말하는 본래면목이라는 것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우주 만법이 본래 한 물건도 없습니다. 

우리의 몸도 사실은 내 것도 아닙니다. 

나라는 것은 진여본체의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그런데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통이 시작된 것입니다. 

본래 아무것도 없는데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어제는 어떤 지인한테 자식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식이 사춘기가 왔는지 공부도 않고 매일 음악만 듣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던 아이가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는지 너무 고통스럽다고 하였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들 때문에 몇 번씩은 고통스런 경험을 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나도 내가 아닌데 자식이야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왔고, 

인연 따라 가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나’라는 물체도 본디 없었고 

너라는 물체도 본디 없었습니다. 

 

내가 욕심을 낸다고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물결치는 바다는 바람에 따라 일렁거리지만 바다 자체는 변함이 하나도 없습니다. 처음부터 움직임도 없었고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본래부터 없는 그 하나에서 나왔고, 

 

일체의 모든 법은 그 하나의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세파에 시달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거센 물결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마치 부표처럼 방향을 잃고 사는 모습을 말합니다. 무엇 때문에 사는지, 삶의 방향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삶이란 파도가 너무 거세서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며 사는 것이 우리 중생들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마치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목적 없이 방황하는 나그네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고향을 찾아야 합니다. 고향을 찾아 따뜻한 부모님이 계시고, 친구가 있고, 형제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야합니다. 

 

정신세계의 고향은 바로 본래면목입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 것이 우리의 고향입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돈도 없었고, 명예도 없었고, 사랑하는 사람도 없었고, 

자식도 없었고, 심지어 나도 없었고,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는, 

 

공(空)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잃고, 무엇 때문에 고통당해야 하는지 자신에게 분명하게 물어볼 일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서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이 처음부터 없는 것을 생각하고 아픔이나 고통을 근본적으로 털어버리자는 말입니다.

 

 흔들림 속에 고요함이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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