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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

내가 만들어낸 환상

절대는 상대가 끊어진 것이다.

     




무엇을 인식하려면 인식을 하는 주체와 인식의 대상인 객체로 나뉘어져야 하지만 절대는 상대가 없으므로 인식이 되지 않는다. 

 

오직 하나이기 때문에 

절대는 자신을 인식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도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 

 그 이름과 형상이 없으므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눈이 눈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절대인 공은 홀로 있으므로 인식이 가능하지 않고 인식이 불가능함으로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현상적으로 부재하기 때문에 영원히 존재할 수 있게 된다. 

                                       

 

현상으로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바람처럼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높고 낮음, 선과 악, 어둠과 빛, 미와 추, 크고 작음, 성과 속, 나와 너, 생과 사, 음과 양, 슬픔과 기쁨, 행복과 불행 등 모든 것이 서로 반대되는 개념에 의지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 

 

독립적인 실체를 그 안에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는 사람이 죽게되면 

그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고 말하고 있으며   

반면에 불교에서는 지은 업(karma:야뢰아식)에 따라 새로운 몸을 찿아 간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쌍생雙生과 쌍멸雙滅의 법칙을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혼돈이다. 모든 존재의 내면에 독립적인 주체가 없다면 개체적인 윤회가 있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정견이기 때문이다.

     

세계 속의 모든 존재와 개념들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쌍雙으로 드러나고 쌍雙으로 사라진다. 예를 들자면 

 

몸은 의식과 함께 나타나고 

몸이 죽게 되면 의식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분리할래야 할 수가 없는 쌍생雙生이고 쌍멸雙滅이다. 어떤 존재에 있어서 생과 사가 필수 불가결한 것이고 나누어질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 자체가 영원성이다.

 

욕망과 두려움 속에서 방황하던 기억에 불과한 개체로서의 윤회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 보다는 윤회할 수 있는 주체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주제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윤회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우주 현상계가 무시간적으로 존재하는 방식인 

연기적 윤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각 개체가 그 자신의 고유한 개체성을 본래 그대로 유지하면서 생과 사를 반복하는 것을 윤회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가’는 ‘나’를 낳게 하는 역할을 한 후 사라지고, ‘나’는 ‘다’를 낳게 한 후 사라지는 형식으로 생명 그 자체가 이어져 가는 것이 윤회이다. 이것을 연기적 윤회라고 부른다. 

 

실재하는 것은 개체가 아니라 

순수한 의식이며 생명 그 자체인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육신을 떠난 영혼이나 업이 따로 남아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거나 아니면 새로 태어나는 생명으로 들어가 환생한다는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소멸과 내 것의 상실을 두려워하는 

내가 만들어낸 환상이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몸이 의식에게 부여하고 있었던 

한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몸이 죽으면 그와 동시에 

나라고 하는 관념도 바람처럼 사라진다. 

 

태어난다는 것은 나라는 관념이 일어나는 것이고 

죽는다는 것은 나라는 관념이 사라지는 것일 뿐이다.



    시詩,반야심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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