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을 수 있는 마음능력’
― 무생법인(無生法忍)
+
선 수행을 통해 확보해야 할 능력은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이다.
존재 환각의 그 오래고 질긴 속박에서 풀려날 수 있으려면, 그 어떤 개념적 경험에도 머무르지 않을 수 있는 마음 지평이 열려야 하고, 선 수행의 요점은 이 지평을 여는 마음자리를 확보하는 데 있다.
『금강삼매경』은
이 ‘머무르지 않는 마음능력’을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 부른다.
원효에 따르면,
십지의 초지 이상에서 가능하게 되는 ‘온전한 관행/참된 관행(正觀/眞觀)’에 의해 성취하는 것이, 이 무생법인이라고 하는
‘머무르지 않는 마음능력’이다.
“무생법인이라는 것은
현상이 본래 일어남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십지 이전의 관행인 방편관에서는 지관(止觀) 수행으로써 ‘존재에 대한 상분별’을 그치지만, ‘상분별을 그쳤다’고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비록 상분별의 ‘있음(有)’은 깨버렸지만,
‘상분별이 없어졌다’는
‘없음(無) 아직 주관에 대한 상분별을 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지의 초지 경지에 들어서면,
‘상분별이 소멸했다’고 하는
‘적멸(寂滅)이나 없음(無)을 붙드는 마음’조차
일으키지 않게 된다.
주/객 이분범주의 모든 것이
식(識)의 구성이라는
유식무경(唯識無境)의 도리를 이해와 마음으로 챙겨,
‘상분별을 그쳤다’는 마음/
주관마저 본래 실체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상분별하는 마음(有/生)’에도 머무르지 않고,
‘상분별하는 마음이 그쳤다’고 하는 마음(無/滅)에도
머무르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무생법인의
‘머무르지 않는 마음능력’이다.
원효의『금강삼매경론』읽기 중에서
'선문禪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 순간이 극락 (0) | 2020.07.21 |
---|---|
내가 만들어낸 환상 (0) | 2020.07.20 |
'불(佛)’이라 함은 깨달음이요, (0) | 2020.07.18 |
진정한 방하착 放下着 (0) | 2020.07.17 |
악담을 수용하여 생기는 공덕 (0) | 2020.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