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不二
화두가 일념이 됐을 때 문득 경계가 와닿는 것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경계가 와닿는다. 무슨 말일까요? 예컨대 산을 보면 보통 때 산은 나하고 상관이 없겠지요. 나는 나고 산은 산입니다.
그런데 문득 그게 내 마음에 들어옵니다.
아니, 어느 날 문득 산이 바로 내 마음입니다.
나 자신으로 느껴져요.
물론 이 상태를 말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문득 나라는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산은 저 밖에 있고, 나는 이 안쪽에 있고, 안과 밖이 다르다 생각했는데 이런 게 본래 없었던 것이지요.
공연한 분별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소리, 새소리가 들립니다. 그동안은 소리가 귀로 와서 들리는 걸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귀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소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바로 눈앞에 있어요.
그런데 이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마음입니다.
소리는 소리가 아니라 바로 마음입니다.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됩니다. 그냥 직관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두 가지 삶을 이야기하셨어요. 분별의 세계와
일념一念의 세계입니다.
분별 세계는 사물을 인식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가령 바다를 이해할 때 파도는 현상이죠. 이 파도와 저 파도가 다르게 보입니다.
그러나 파도 밑의 바닷물은 한 덩어리입니다. 바닷물은 하나죠. 다만 겉모양이 파도로 나타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파도를 보고 바다를 이해하면 일면만 보는 것이 되죠.
파도와 바닷물은 하나입니다.
하나로 보아야 합니다.
고통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모든 종교의 지향입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선
고苦와 낙樂이 다르지 않습니다.
장애와 해탈이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부처님께선 이것을 직접 체험하고 깨달아 초월하는 삶을 살고 우리에게 그 길을 가르쳐 주신 겁니다.
멀리서 두 개로 보이던 섬이 가까이 가서 보니 하나의 바위였습니다.
깨달음의 세계도 이와 같습니다.
현상만을 보는 사람은
산은 산이라서 결코 물이 아니고,
물은 물이라서 결코 산이 아닌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본질을 보는 사람은 산과 물이 둘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안개, 물, 얼음은
서로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작은 물방울로 같습니다.
물 분자가 서로 떨어져 가벼울 때는 구름인 것이고, 무거워지면 눈과 비가 되고 얼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서로 다른 조건으로 형상이 바뀌는 것뿐입니다.
본질을 깨우치면
삼라만상이 하나임을 절로 알게 됩니다.
‘나는 나일 뿐이고, 너는 결코 내가 아니다.’라고 분별하던 중생들 사이에서 부처님은 바로
모두가 자기 자신임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자신과 똑같은 수많은 사람이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석가모니 부처님은 보셨습니다.
깨닫는 순간에 모든 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나고 고통으로부터 해방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더 나아가 이것저것에 집착하는 중생들을 보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세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산이나 들이나 사람이나 모두가 자기 자신으로 느껴질 때 이때부터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보살행이 시작됩니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일은 힘들어도 참을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이들이 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의 분신이며, 또 나와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을 위해 희생해도 희생한다는 마음 자체가 없습니다.
이 마음이 연장되면 바로 무아無我가 됩니다.
무아에 대한 깨달음, 즉 일체가 하나라는 깨달음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보살행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진정으로 보살행을 하기 위해서는 무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화두를 들든지 염불을 하든지 무엇이든 들고서 정말 열심히 정진을 하다 보면 큰 깨달음은 아니더라도 이 세계가 둘이 아니라는 초보적인 깨달음은 쉽게 체득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이런 깨달음을 체험했을 때 남을 위한 헌신이 바로 나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참된 보살의 삶이 가능해진다는 말입니다.
수행의 최종 목적은 일체 중생과 털끝만큼의 차이도 없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내 욕망이 줄면
그만큼 타인과 만萬 생명과도 하나가 되어 행복해집니다.
중생이 무지한 것은 탐욕이 행복의 길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나에 대한 욕심을 줄여 남을 돕고 배려하고 존중할 때 스며드는 것입니다.
- 수좌 적명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