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삶을 과거·현재·미래로 나누는 것은 생각이 만들어낸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착각이다.
과거와 미래는 생각의 형태이며 정신적으로 추상적인 개념이다. 과거는 오직 지금 현재에서만 기억될 수 있다.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때에도 ‘지금’ 일어났던 사건이다. 미래가 다가왔을 때는 이미 지금이 된다.
그러므로
진정 존재하는 것, 지금 존재하는 유일한 것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 전념하는 것은 삶에 필요한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이차적으로 중요한 것들을 대하면 훨씬 여유가 생긴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지금밖에 없으므로 나는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지금 이 순간을 적이 아닌 친구로 만들라는 뜻이다. 지금에 감사하고 지금에 경의를 표하라.
지금이 삶의 근본이 되고 중요한 구심점이 될 때 삶은 여유롭게 풀리기 시작한다.
지금이 지금의 모습인 것은 그 밖에 다른 모습으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자들은 늘 알고 있던 진리였지만 최근 물리학자들이 과학적으로 밝혀낸 것이 있다. 이 세상에서 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사물이나 사건은 없다는 것이다. 겉모습 밑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만물은 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각각의 개체는 지금 이 순간이 취하는 특정한 형태를 준 우주적 전체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긍정하는 순간
나는 생명의 지혜와 힘과 조화를 이룬다. 그때 비로소 나는 이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일도 할 수 있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매우 혁신적인 정신 수행이 있다. 바로 지금 일어나는 것을 무엇이든 다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안에서든 밖에서든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 전념할 때
나는 생생히 깨어있음을 자각한다.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 생각의 꿈에서, 그리고 과거와 미래의 꿈에서 막 깨어난 것이다. 그렇게 명료하고 그렇게 단순할 수가 없다. 문제가 생길 여지도 없다.
오직 있는 그대로의 이 순간이 있을 뿐.
나의 생각과 감정과 지각과 경험은
내가 아니다.
내 삶의 내용물은 내가 아니다.
나는 생명이다.
나는 만물이 생성되는 공간이다.
나는 순수의식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다.
-고요함의 지혜 중에서-
'이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될 듯 묘연하다.
이 공부의 인연이 되어
수용과 믿음이 생기면
먼 곳에서 가까이 다가온다.
어느날 문득,
"아, 이것이구나."
다른 세상이 보인다.
같은 세상이지만 . . .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음은
벽이 있는 내생각에 부딪쳐
들어올 수가 없는 말이다.
그 벽을 뚫는 것이
이 공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