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드넓고 고요한 공간을 가지고 있다.
허공처럼 걸림 없고 지극히 고요한 그곳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다.
존재의 심연에 있는 나의 자아는 고요함으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이름이나 형상보다 훨씬 더 깊은 차원에 존재하는 ‘나의 실체’이다.
나의 실체는 고요함이다. 고요함은 무엇인가? 바로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글을 인식하고 그 인식을 사고로 변환시켜주는 내면의 허공이며 맑은 마음이다. 맑은 마음이 없다면 나는 인식하거나 사고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맑은 마음이 없다면 이 세상도 없다.
내가 바로 맑은 마음이다.
잠시 사람의 모습으로 변장한 맑은 마음이다.
밖이 소란함은 안이 소란한 것이요,
밖이 고요함은 안이 고요한 것이다.
주변에 잠시라도 고요함이 내려앉을 때면 귀를 기울여보라. 다가온 고요함을 바라보고 주시하라. 밖의 고요함에 귀를 기울이면 안의 고요함이 깨어난다. 마음이 고요해져야 주변의 고요함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밖이 고요함을 알아차리는 그 순간
내 안에 아무런 생각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주시하라. 다만 온 마음으로 바라볼 뿐 아무런 생각도 없다.
고요한순간을 주목하라.
하나의 생각이 가고 또 하나의 생각이 아직 다가오기 전의 고요한순간,
대화 중 생겨나는 짧고 고요한 공백,
피아노나 플루트 연주곡을 들으면서 음과 음 사이에 존재하는 고요한순간,
그리고 들숨과 날숨 사이에 존재하는 고요한순간을 주시하라.
그러한 고요한순간을 주시할 때
‘무언가’를 인식하던 마음은 그저 텅 빈 맑은 마음이 되어 내면에 형상을 초월한 순수의식의 차원을 깨운다.
형상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던 과거의 당신은 이제 없다.
이 세상에서 형상을 여읜 유일한 존재가 고요함이다. 하지만 고요함은 물질이 아니며 이 세상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지금 나는
고요함 속에 머무르는 나무나 인간을 보고 있다.
여기서 보는 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나란 사람이 아니라 훨씬 더 깊은 곳에 있는 무엇이다.
여기서 보는 자는 바로 순수의식이다. 순수의식이 손수 창조해 낸 것들을 순수의식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다.
지혜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당신이 모든 것을 멈추고 고요해질 때
지혜가 바로 거기 있다.
그저 보고 그저 들어라. 그 이상은 필요 없다.
당신이 고요해지고, 그저 보고 그저 들을 때
생각을 여읜 지혜가 내면에서 깨어난다.
고요함의 지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