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분명히 알지 못했거든 반드시 선지식에게 참문[叅]해서 생사의 근본을 깨치도록 할지어다.
만일 성품을 보지 못했으면 선지식이라 할 수 없나니 만약 그러하다면 비록 12부경을 다 외운다 하여도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고 삼계에 윤회하면서 고통을 받되 벗어날 기약이 없게 되리라.
옛날 선성(善性)이란 비구가 12부경을 다 외웠건만 여전히 윤회를 면치 못했으니,
이는 오직 성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선성도 그러하였거늘 요즘 사람들은 겨우 서너 권의 경론(經論)을 외우고서 불법을 아는 것 처럼 외치니,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만일 자기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 부질없는 문구나 외우는 것으로는 아무 쓸모도 없느니라.
만일 부처를 찾으려면 모름지기 성품을 보아야 하나니, 성품이 곧 부처니라.
부처란 곧 자유로운 사람이며
할 것도 없고 해야 할 것도 없는 사람이니라.
만일 성품을 보지 못하면 종일토록 분주히 밖을 향해 구하면서 부처를 찾더라도 원래 얻을 수 없느니라.
비록 한 물건도 얻을 것이 없다고는 하나 아직 알지 못한다면 반드시 선지식을 참문해 간절히 애써 구함으로
마음이 열리도록 해야 할지어다
나고 죽는 일이 크니 헛되이 살아 버리지 말라. 스스로 속여서 이익이 없느니라.
진기한 보물이 산같이 쌓이고 권속이 항하의 모래만큼 많더라도
눈이 떠있을 때는 보이거니와 눈이 감긴 뒤에도 보이던가.
그러므로 유위법(有爲法)은 꿈이나 허깨비 등과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으리라.
만일 서둘러서 스승을 찾지 않으면 헛되이 한평생을 보내게 되리라.
부처될 성품을 본래 가지고 있더라도 스승을 비롯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하게 깨닫기 어려 우니
스승을 비롯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가 드무니라.
경에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다” 하시고 또 “있는 것이 있는 곳에 부처가 있다” 하셨으니,
자기의 마음이 곧 부처인지라, 부처를 가지고 부처에게 예배(禮拜)하지 말지니라.
만일 부처와 보살의 모습이 홀연히 나타나더라도 절대로 예경하지 말지어다.
내 마음이 공적(空寂)하여 본래 이러한 모습이 없나니
만일 형상을 취한다면 곧 마에 포섭되어 모두가 삿된 도에 떨어지리라.
만일 허깨비가 마음에서 일어난 줄 알면 예경할 필요가 없나니,
예배하는 이는 알지 못하고, 아는 이는 예배하지 않느니라.
예경하면 곧 마에 포섭되리니 학인(學人)이 행여나 알지 못할까 걱정되어 이와 같이 밝혀 두노라.
부처님들의 근본 성품 바탕 위에는 도무지 이런 안팎의 모습이 없나니 간절한마음으로 새겨 둘지어다.
특이한 경계가 나타나거든 결단코 취하거나[採括] 끌리지도 말고 또 두려워하거나 겁내지도 말고
의심하거나 헛갈리지도 말지니라.
내 마음이 본래 청정하거늘 어느 곳에 이러한 모습이 있단 말인가?
나아가서는 하늘, 용, 야차, 귀신, 범왕 등의 상(相)에라도 공경하는 생각을 내지 말 것이며, 두려워하지도 말지니라.
내 마음이 본래 공적한지라 저들 모습이 모두 허망한 형상(形相)이니,
결코 형상을 취하지 말도록 할 것이니라.
만일 부처나 법이라는 견해를 일으키거나, 또는 부처나 보살의 모습에 공경할 생각을 낸다면 스스로를 중생의 축에 집어던지는 격이라 하리니
만일 바르게 알고자 할진댄 다만 온갖 형상에 집착하지 않기만 하면 되리니 따로이 할 말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경에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다” 하신 것이니,
도무지 일정한 실체랄 게 없으며,
환(幻)에 일정한 상이 없는지라 이것이 무상한 법이니
다만 형상을 취하지 않으면 거룩한 뜻에 부합되리라.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온갖 형상을 여의면 곧 부처라 한다” 하셨느니라.
달마대사 혈맥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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