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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

참된 자기경험

늘 현존하는, 

조건 지어지지 않은, 

한계 없는 본성에 관한 이해를 

실제 느끼는 경험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방의 물리적 공간을 상상하고, 

거기에 앎의 성질을 더해 보세요. 

이제 그 공간은 

아는 물리적 공간, 

인식하는 공간입니다. 

 

이제 이 아는 물리적 공간이 

자기의 경험을 살펴본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아는 공간이 

방 안의 사물에 주의를 기울이면, 

사물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는 것을 

늘 발견할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네 개의 벽도 

자기의 경험 속에서 

나타나고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아는 물리적 공간은 

자기가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것은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 공간이 

경험하는 자기는 

늘 현존하며 한계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이 공간과 앎의 복합체에서 

공간 같은 성질을 제거하면, 

남은 것은 

차원이 없는 앎이 전부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참된 자기입니다.

 

우리 자신인 앎은 

(몸과 세계에 관한 우리의 인식을 이루는) 

감각과 지각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은 경험하지만, 

우리의 참된 자기가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것은 경험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몸이 나타날 때 

자기도 함께 태어나는 것을 알지 못하고, 

몸의 경험을 이루는 

감각과 지각이 사라질 때 

자기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몸 이전에 존재했다거나 

몸이 죽은 뒤에도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몸 이전에는 

‘이전’이 없고 

 

몸이 죽은 이후에는 

‘이후’가 없습니다. 

 

 

심지어 

몸이 존재하는 동안에도 

앎이 지속되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시간 속의 영원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늘 현존합니다. 

우리는 영원합니다. 

 

 

예수가 

 

“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 ”    - 요한복음 8장 58절 -

   

라고 한 말은 

이를 가리킨 것입니다.

 

•••

 

우리의 아는 

물리적 공간으로 돌아와서, 

이 아는 공간이 

자기의 세 가지 샘플을 뽑아 본다고 상상해 보세요. 

 

첫째는 

현재 건물이 들어서기 전인 

500년 전의 자기이고, 

 

둘째는 

현재의 자기, 

 

그리고 

 

셋째는 

건물이 철거된 후인 

500년 뒤의 자기입니다.

 

이제 아는 공간이 

자기의 세 가지 샘플을 비교해 보면, 

세 가지가 

모두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실험이 진행된 천 년 동안 

일어난 어떤 일도 이 공간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는 공간은 

낡지도, 오염되지도, 

변색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늘 똑같은 

본래의 깨끗한 상태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참된 자기 경험으로 

돌아와 봅시다. 

 

만약 우리 삶의 여러 단계에서 

우리의 생각, 감정, 감각, 지각을 

샘플로 뽑아 비교해 보면, 

서로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다양한 연령대에서 

경험으로 인해 

어떤 성질들을 띠기 전의 참된 자기를, 

우리의 벌거벗은 존재를 

샘플로 뽑아 비교해 보면, 

 

우리의 참된 자기는 

늘 똑같은 

본래의 깨끗한 상태로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우리의 참된 자기는 

자기 안에서 어떤 변화도 경험하지 않습니다. 

 

경험에서 얻는 성질을 제외하면, 

참된 자기는 

단순히 현존하고 알며, 

모든 형태의 경험으로 자신을 채색하지만 

자기 아닌 다른 것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참된 자기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

 

 

•••

 

아는 물리적 공간이 

방 안의 사물들을 

스스로 둘러본다고 상상해 보세요. 

 

이 공간이 보는 모든 것은 

저마다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아는 공간이 더는 방 안의 사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의 앎이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한다면, 

 

아는 공간은 

어떤 한계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는 공간은 

방 안의 모든 사물에서 

테두리를 발견하지만, 

 

자기에게서는 

테두리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자기가 

열려 있고 비어 있으며 

드넓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객관적으로 알고 있는 

모든 것에는 

시간이나 공간의 한계가 있지만, 

 

우리의 참된 자기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시간과 공간조차도 

경험의 대상입니다. 

 

앎 안에서 

나타나고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시간과 공간은 

실제로 경험된 적이 없습니다. 

 

 

 

생각이 없으면 

시간의 경험도 없고, 

 

지각이 없으면 

공간의 경험도 없습니다.

 

 

심지어 생각과 지각이 있을 때도 

시간과 공간을 실제로 경험하지는 못합니다. 

 

 

시간은 생각에서 추론되고, 

공간은 지각에서 추론됩니다.

 

 

이는 우리가 

매일 밤 깊은 잠에 빠질 때 확인됩니다. 

 

생각과 지각이 없는 상태에서는 

시간이나 공간의 경험이 없습니다. 

 

그것들은 

영원하고 무한한 앎의 본성이 

생각과 지각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할 때 

나타나는 방식입니다.

 

우리의 참된 자기 경험에서 

우리 즉 앎은 

한계가 없으며 무한합니다. 

 

우리는 

노력이나 수행, 훈련을 통해 

한계가 없어지거나 

무한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참된 자기가 본래 그렇다는 것을 

알아볼 뿐입니다.

 

이러한 알아봄은 

비범하고 신비한 체험이 아닙니다. 

단순히 우리의 참된 자기 

또는 존재의 본성을 

 

 

지금 있는 그대로 

알아보는 것일 뿐입니다.

 

 

" 나 자신, 영원하고 무한한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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