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직접 경험만을 참조하면서,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 나의 삶에 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 자신과 분리되거나 떨어질 수 없는,
평생 나와 함께하는
그 하나는 무엇인가? ”
생각, 느낌, 감각, 지각 등
모든 범위의 경험을 떠올리며,
그 하나하나에게
당신의 삶 내내 늘 있었는지
물어보십시오.
우리는 경험에 연속성이 있고, 경험에 연속성을 주는 어떤 것이 모든 경험 내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생각은
분명히 그것이 아닙니다.
생각들은 때때로 끊기기 때문입니다.
생각들은 오고 갑니다.
느낌과 감각도 분명히 그것이 아닙니다.
오고 가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모습, 소리, 맛, 감촉,
냄새와 같은 지각도 아닙니다.
이것들도
생각, 느낌, 감각처럼
일어나고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경험에 연속성을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연속성
무엇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물질에 관해서만 말할 수 있는
생각에게 묻지 마십시오.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자신의 경험에게 물어보십시오.
경험에 연속성이 있습니다.
그 연속성은
틀림없이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때때로 끊기는 대상인
생각, 느낌, 감각, 지각으로
이루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모른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경험에
연속성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그 연속성을 경험합니다.
그러니 틀림없이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 • •
우리의 정체성을 둘 가치가 있는 것은
오직 오직 연속적인 것,
더 정확히 말하면
늘 있는 그것뿐입니다.
만약 오고 가는 것,
때때로 끊기는 것에 정체성을 둔다면,
자신이 곧 사라질 것이라고
늘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생각, 느낌, 감각, 지각에
우리의 정체성을 둔다면,
우리가 곧 사라질 것이라고
늘 느낄 것입니다.
이것들 하나하나가 사라질 때마다
우리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라진다는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이어지는 생각, 느낌, 행동, 관계를
미묘하게 통제할 것입니다.
진정한 안전을 원한다면,
정말로 안전한 것에 정체성을 두어야 합니다.
사라지는 것은 정말로 안전할 수 없습니다.
안전과 그에 따른 평화를 원한다면,
나타나거나 움직이거나 변하거나 사라지지 않는 것,
안전한 것에 정체성을 두어야 합니다.
생각, 느낌, 감각, 지각 등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대상은
(아무리 미묘하더라도) 오고 갑니다.
우리의 삶 내내 늘 존재하는 단 하나는
앎이며,
우리는 그 앎으로 모든 경험을 압니다.
이 앎은
우리가 마음으로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대상이 아니며,
관찰되거나 지각될 수 있는 성질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앎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그것으로 존재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앎을 알아차리면서
앎으로 존재하는 방법은
우리의 정체성을
더는 앎이 아닌 다른 것에 두지 않는 것,
우리의 정체성을
더는 생각, 느낌, 감각, 지각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
가는 것은 가게 놓아두십시오.
어떤 것이든
사라지는 것은 사라지게 놓아두십시오,
그러면
사라질 수 없는 단 하나가 남을 텐데,
삶에서 그것의 존재를
서서히 느껴 보십시오.
그것은 처음에는
경험의 배경에 있는 평화로서 알려지고,
다음에는 몸과 마음을 점점 더
그 존재로 가득 채우며,
행복으로서 경험의 전면에 흐르게 될 것입니다.
마음은
무엇이든 오고 가는 것에 주더라도,
가슴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는 그것에 주십시오.
• • •
백 개의 색구슬로 이루어진 목걸이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을 백 개의 분리된 대상이 아닌
하나의 목걸이로 보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백 개가 아닌 한 개로 보이게 하는,
목걸이에 단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슬들을 엮고 있는,
보이지 않는 줄입니다.
하나의 줄 때문에
백 개의 구슬이 하나의 목걸이로 보입니다.
각각 분리되고 제한된 백 개의 구슬은
우리의 ‘만 가지’ 일상 경험
( 생각, 이미지, 아이디어, 느낌, 감각,
보이는 모습, 소리 등의 많음과 다양성)
입니다.
그러나
이 ‘만 가지’를 하나로,
하나의 경험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비록 생각이 하나의 경험을
‘몸’, ‘마음’, ‘세계’라 불리는
많음과 다양성으로 나눌지라도,
한 순간에는
하나의 경험만 일어납니다.
이렇게 다양하고 많아 보이는 경험에
연속성과
연결성을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째서 경험은
혼란스러운 생각,
느낌,
감각,
지각으로
뒤죽박죽이 되지 않을까요?
그것은
모든 생각, 느낌, 감각, 지각이
앎의 보이지 않는 줄에
함께 꿰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목걸이로 만든 줄이
보이지 않듯이,
늘 있는
앎의 줄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구슬들이지만,
그것들을 하나로 결합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줄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경험에 연속성과 연결성을 주면서
내내 관통하는 것은
우리의 참된 자기인 앎입니다.
당신의 정체성을
구슬에,
대상에,
보이는 것에 두지 마십시오.
몸, 마음, 세계는
연속되거나 영원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안전이 없습니다.
평화가 없습니다.
몸, 마음, 세계가
연속되고 영원해 보이는 것은
당신 자신인
앎 때문입니다.
경험에
연속성과 연결성을 주는 것은
당신 자신입니다.
당신이 모든 경험에
실재성을 부여합니다.
몸, 마음, 세계에
당신의 늘 있는 실체
(순수한 앎의 실재성과 단일성)를
빌려 주십시오.
그러나
아주 주지는 마십시오.
생각, 감각, 지각과 같은
어떤 현상이 일어날 때,
그것은
그 실재성을
당신에게서 빌리고 있음을
분명히 보십시오.
그리고
그 대상이 사라질 때는
그것의 실재성을 되찾으십시오.
그것의 실재성은
당신으로서,
당신과 함께 남아 있음을 보십시오.
당신이 바로
늘 존재하는
모든 경험의 실재이며,
그 실재는
결코 나타나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달리 말하면,
실재하는 것은
나타나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말하듯이
“ 있는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있지 않은 것은 결코 생기지 않습니다. ”
당신이
있는 모든 것의 실재입니다.
그것이
나 자신입니다.
보이는 모든 것은
우리의 참된 자기에게서
그것의 존재와 실재성을 빌립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말하듯이
“ 모든 것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존재할 수 없습니다. ”
사물들은 저마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존재는
겉으로 보이는 대상이 아닌
우리의 참된 자기인
앎에 속합니다.
당신이
세계에 실재성을 부여합니다.
세계를 그처럼 대하면,
세계는 절대로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순수한 앎의 빛"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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