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적이고 스스로를 알아차리는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곧 스스로를 아는 것이고,
이는 무명이 제거된 후에
빛나는 자기 앎
self-knowledge입니다.
무명을 제거한 후에
환히 밝아오는 진정한 앎을
다양한 영적 전통에서는
깨우침awakening,
깨달음enlightenment,
자아실현self-realisation,
구원salvation,
빛남illumination,
해탈liberation,
사토리satori,
열반nirvana,
목샤moksha,
보디bodhi,
프라냐prajna 등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들은
우리 자신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즉각적인 앎이
이색적이고도 생소한 것처럼
느껴지게 할 우려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 자신에 대한 앎처럼
평범한 것도 없는데 말이지요.
마음이 오로지 대상적 경험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데 익숙해져 있다면, 비대상적 인식은 몸과 마음을 깊이 이완시켜 주게 됩니다.
우리 몸과 마음 안에
평생 켜켜이 쌓인 긴장이
풀리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완은
몸과 마음에 특이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런 외적인 징후는
스스로의 존재를 단순히 인식하는
깨달음의 징후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혼동되기도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스스로의 존재를 단순히 인식하는 것이
너무나 고요히 이루어진 나머지,
이미 그러한 변화가
오래전에 일어났음에도
우리의 마음이 눈치 채지 못하고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스즈키 슌류鈴木俊降 선사가 자신의 깨달음의 경험에 대해 왜 언급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을때,
방 뒤쪽에 앉아 있던 그의 아내가 일어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번도 깨달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우리의 진정한 본질을 인식하는 것은
특이한 경험이 아닙니다.
사실 그것은 경험조차 아니지요.
이러한 인식을 통해
본질적이고도 환원할 수 없는,
스스로를 알아차리는 존재는
외관상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실체를 드러냅니다.
그것은 열려 있으며,
투명하고,
환히 빛나며,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불멸의 실체입니다.
그러한 마음은
알아차림의 중심에서
다시 생겨나서
대상적 경험의 영역으로 나아갑니다.
워즈워스Wordsworth의 시처럼
“영광의 구름을 이끌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알아차림으로부터 생겨나서,
알아차림의 본질적인 특성인
흔들리지 않는 평온함과
무조건적인 기쁨을 인간에게 전해줍니다.
-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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