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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

삶의 흐름과 에너지

 

일상 속에서 

스트레스와 저항을 일으키곤 하는 

자신의 습성을 

관찰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습성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먼저 우리가  삶을 그저  자체로서 

존재하도록 내버려 두기를 

그토록 거리껴 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삶에 

맞서는 능력을 지닌 

우리 내부의 그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면 

힘을 지닌 그것은 

당신, 

참자아, 

내면에 깃든 존재임을 알게  것이다. 

 힘은 의지력이라 불린다.

 

 

의지는 

당신의 존재로부터 나오는 

실질적인 힘이다. 

그것이 팔과 다리를 움직이게 한다. 

 

사지는  맘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사지는 당신이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도록 의지를 행사하기 때문에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다. 

 

어떤 생각에 집중하고자  때도 당신은 이와 동일한 의지를 사용한다. 

 

참자아의 능력이 집중되어 물질적, 정신적, 감정적 영역으로 보내지면 어떤 힘이 만들어지고, 

 

우리는 그것을 의지 부른다. 

 

당신이 어떤 일이 일어나게 하거나 일어나지 않게   사용하는 것이 바로  힘이다. 

 

 

당신은 무력하지 않다. 

당신은 일에 영향을 미칠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한다는 짓이 어떤 것인지를 알면 놀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력을 

삶의 흐름을 거스르는 데에 

발휘하고 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거기에 저항한다. 

 

하지만 

우리가 저항하는 일은 이미 일어났는데, 

거기에 저항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가장 절친한 친구가 멀리 떠나 버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사건에 대해오래도록 마음속에 저항감을 품고 있어 봤자 친구가 떠나 버린 현실을 바꿔 놓지 못한다. 그것은 상황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사실은 그것이 

실제 상황에 대한 저항이라고 

주장할 수조차 없다. 

 

예컨대, 

누군가가 우리에게 나쁜 말을 한다고 해서 아무리 저항해 봤자 상황을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우리가 저항하고 있는 대상은 

우리를 통과해 지나가는 

사건의 경험이다. 

 

 

그것이 우리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마음속에 이미 있는 것과 맞지 않는 정신적, 감정적 인상을 만들어 내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것이 

마음과 가슴을 지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사건의 영향력에 대항하는 

의지력을 발동한다. 

 

달리 말하자면, 

어떤 사건의 경험은 

감각이  사건의 관찰을 마침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건은 또한 

에너지 차원에서 

마음을 통과해야만 한다. 

 

이것은 우리가 날마다 경험하는 과정이다. 

 

사건을  먼저 감각이 관찰하고, 그것이 우리의 정신적, 감정적 에너지 저장소를 건드리면 에너지의 움직임이 일어난다. 

 

 움직임은 마치 물리적 자극이 수면에 물결을 일으키는 것과도 비슷하게 마음을 지나간다. 

 

놀랍게도 우리는 

 에너지의 움직임에 대항하는 

능력을 실제로 가지고 있다. 

의지력으로써 

에너지의 전파를 멈출  있고,

이것이 긴장을 일으킨다. 

 

 하나의 사건, 

혹은  하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경험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다가 

결국은 진이  빠져 버리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당신도 이것을 너무나  알고 있으리라.

결국 당신은 

 저항이 에너지의 엄청난 낭비임을 

깨달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대개 

한두 가지 일에 저항하는 데에 

의지를 사용한다. 

이미 일어난 ,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그것이다. 

 

당신은 마음속에 들어앉아서 

과거의 인상, 

아니면 미래에 대한 생각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에 저항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 

 

 

그것은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므로 

당신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자신과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에 저항하는 데에도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으므로 

당신은 자신의 귀한 에너지를 

마구 아무렇게나 버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에너지 흐름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인생에 중대한 결과를 가져온다. 

 

이미 일어난 사건의 에너지에 대항하여 의지력을 쓴다는 것은 잔잔한 호수에 떨어진 낙엽이 일으킨 물결을 멈추게 하려고 애쓰는 것과도 같다. 

 

당신이 하는 짓은 무엇이든 

 많은 혼란만 일으켜 놓을 뿐이다. 

 

저항하면 에너지는  데가 없어진다. 

 

그것은 마음속에 갇혀 있으면서 당신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가슴에서 에너지 흐름을 막아 폐색되고 맥없는 기분을 만들어낸다. 

 

뭔가가 마음을 짓누르고 부담스럽게 만들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곤경이다. 사건이 일어났고, 우리는 거기에 저항함으로써 그것의 에너지를 마음속에 계속 품고 있다. 

 

당장 오늘의 일들을 대면할 ,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소화할 능력도 없다. 

 

아직도 과거의 에너지와 씨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가면  에너지가 쌓이고 쌓여서  사람은 완전히 기운이 막혀서 쓰러져 버리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이것이 기진맥진이라는 말이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트레스로 넘어갈 이유도 없고 기진맥진할 이유도 없다.  에너지가 속에서 쌓이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나날의 매순간이 

당신을 지나가도록 허용하면 

 

 

당신은 매순간을 완벽한 휴가를 보내는 것처럼 신선한 기분으로 보낼  있다. 

 

 

스트레스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삶의 사건들이 아니다. 

 

그런 경험을 일으키는 것은 

그것에 대한 당신의 저항이다. 

 

 

삶의 현실이 당신을 지나가지 못하도록 저항하는  의지력을 씀으로써 문제가 일어난 것이므로, 해결책은 분명하다. 

 

 

저항을 멈추는 것이다. 

 

 

어떤 일에 굳이 저항하겠다면 최소한 그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를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몰이성적이게도 귀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저항의 과정을 기꺼이, 

자세히 들여다보라. 

 

 

저항이 일어나려면 뭔가가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판단이 먼저 일어나야한다. 

 

온갖 사건들이 별일 없이 당신을 지나간다. 그런데 이것만은  저항하기로 했는가? 

 

그냥 지나 보낼 것인지, 의지력을 발동해서 밀쳐내든가, 아니면 부여잡을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마음속에 뭔가

근거가 있어야 한다. 

 

당신이 

눈길도 주지 않는 일들이 

무수히 많다. 

 

날마다 운전을 하고 다니지만 당신은 건물과 가로수에 전혀 주의를 주지 않는다. 

 

그것을 보지만 

그것은 그냥 당신을 지나간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차선이 삐뚤빼뚤하면 차선 그리는 일이 직업인 사람은 아주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그것이 너무나 거슬려서  길로는   다시 다니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일이나 문제에 저항을 보이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것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야 한다거나 그것이 얼마나 비중이  문제인지에 대한 관념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이해하려면 

 

당신이 

일은 어떻게 돌아가야만 한다는 

자신만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미 일어난 일에 저항하여 

의지를 발동하게 되는 것도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신은 

 고정관념을 어디서 주웠는가? 

 

당신이 라일락이 만발한 모습을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자.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게  당신만 괴롭히는가? 그건 간단하다. 

 

라일락을 좋아해서 기르는 애인이 있었는데 그녀가 하필 라일락이 만발했을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은 

라일락만 보면 가슴이 닫힌다. 

 근처에 가기도 싫다. 

그것만 보면 절로 마음이 혼란해진다.

 

 

삶에서 일어나는 

이런 개인적인 일들이 

우리의 마음과 가슴속에 각인된다. 

 

 

 인상들은 

저항 아니면 집착하기 위해 

의지를 발동시키게 하는 근거가 된다. 

 

 이상은 없다. 

 사건은 어린 시절에 일어났을 수도 있다.

 

그것이 언제 일어났는지와는 상관없이 하여간 그것이 당신의 내면에 인상을 남겼다. 

 

이제 당신은  과거의 인상에 근거하여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저항한다. 

 

이것이 

내적 긴장과 혼란과 몸부림과 

고통을 일으킨다. 

 

이것을 깨달아 

 

과거의 사건이 

당신의 삶을 몰아가도록 

놔두기를 거부하지 않고, 

당신은 스스로 나서서 

 속으로 말려든다. 

 

당신은 그것이 실제인  착각하여 저항이나 집착에  가슴과 영혼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실은 

 모두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것은 당신의 삶을 

파멸로 몰아갈 뿐이다.

 

 

어떤 일에 대해 

두려움과 욕망이 없으면 

문제될 것이 정말 없다. 

 

당신은 그저 

삶이 펼쳐지도록 놓아두고 

이성적이고 자연스러운 태도로 

그에 임한다. 

 

 다음 일이 일어나면 

  순간에 온전히 임하고 

그저 삶의 경험을 즐긴다.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문제없는 상태, 

긴장과 스트레스가 없는 상태, 

기진맥진하지 않는 상태에 관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당신을 유유히 지나갈  있게 된다면 

당신은 깊은 영적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 속에서도 

막힌 에너지를 쌓아가지 않고 

깨어 있을  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만사가 투명하고 확실해진다

 

-상처 받지 않는 영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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