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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

몸과 마음은 조건지어 있다.

 

바깥에 있는 물질 현상 일체를 

불교에서는 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에게 문자 그대로 

색깔과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에게 

정보로서 기능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줄곧  속에서 살아갑니다.  과정에서   대해서는  행동,  대해서는  행동 취합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조건 짓기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집니다. 

 

낱낱의 시각적 이미지는 우리에게 방아쇠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미지가 일련의 운동·행동을 순간적으로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건너 저편에 자기가 좋아하는 여성이라는  보였다고 합시다. 그때 우리몸에서는 혈류나 내분비계를 포함해서, 과장해서 말하면 격변이 일어납니다. 

 변화를 우리는 기쁘다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어디선가  남자가 나타나  여성과 사이좋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갔다고 합시다.   또한 우리 몸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이번의 변화는  부르는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물론 

시각적인 이미지만이 아닙니다. 

청각적인 이미지도, 

미각적인 이미지도 

같은 변화를 우리에게 일으킵니다. 

방아쇠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잠깐 주의하기 바랍니다. 

방아쇠 역할을 하는 것은 

 

 

지금 현재 바깥에 있는 것이나 

일어나고 있는 일만이 아닙니다. 

 

 

과거에 있었던 , 기억 또한 우리를 조건 짓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도 

우리는 조건 지어져 버립니다. 

 

 

 

뭔가를 상상한다거나 혹은 일어나는 생각에 따라서도 마치 지금 그것이 여기 눈앞에 있는  같은반응이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그렇지 않나요? 

 

무서운 일을 상상하면 소름이 돋습니다. 

억울했던 일이 생각나면 화가 납니다.

 

우리는  상상하고 생각합니다. 

오래전에 지나가 버린 옛날 일에, 

 

 

 

마치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성을 냅니다. 

 

 

 

혹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눈앞이 캄캄해지기도 합니다. 생각하고 상상하는 능력이야말로 우리의괴로움을 만들어 내는 최대 원인  하나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상상想像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像 

생각한다想라는 말입니다. 

 

 이미지를 불러내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불러낸 이미지일 뿐인데, 

 이미지는 진짜 이미지와 같은 힘으로 

우리를 구속할  있습니다. 

 

 

그것이 

진짜로 거기에 있는 것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은 반응을 일으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바깥에 있는 것을 앞에 두었을 때도 그것을 정보로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시각적인 이미지에 반응하는 것이지 

물리적인 힘에 반응하는  아닙니다. 

 

 

그래서 

 

실제로 바깥에 있는 것에 반응하거나, 

과거에 있었던 일에 반응하거나, 

상상에 반응하거나, 

 

 

거기에는 질적인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지라는 정보에 반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으로부터 오는 시각적인 이미지로서의 정보는 바깥의 진짜에서 오든, 기억의 이미지라는 형태로 안에서 오든 우리 몸에 변화를 일으키는 방아쇠로서의 힘임에는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 몸과 마음은 

정보에 조건 지어져 있지 

물리적인 힘에 조건 지어져 있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 인문학을 좋아하는 반야심경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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