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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

반야바라밀

 

자기를 활짝 열어놓고 

 

 

 내가 이것을 한다. 

   내가 저것을 한다 

 

 

 생각 없이 모든 것을 포기하면, 

그렇게 자기를 철저히 비우면 

에고를 유지하거나 무엇을 쌓아두는 일에 

연관된 상황들이 하찮은 것으로 바뀝니다. 

 

그게 바로 지계예요. 

 이상 상처를 입을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자기를 열어놓았으니까요. 

 

 

 

어떤 상황에도 무감각하지 않게 됩니다. 

여기서 

크샨티 파라미타(Kshanti Paramita)’, 

 인욕(忍辱) 바라밀이 따라오지요. 

 

인욕에서 비르야(Virya)’, 

 정진(精進)하는 에너지가 나오고 

 에너지는 

 

드야나(Dhyana)’, 

 선정(禪定) 경험하게 합니다. 

 

 이상 당신은 

바깥 상황을 당신과 무관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인생의 춤과 놀이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이제 당신은 

더욱더 자신을 열어놓게 됩니다. 

 

어떤 것도 거절하거나 

수용해야  대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냥 다가오는 상황에 맞추어 

흐를 뿐입니다. 

 

 

 

어떤 종류의 다툼도 경험하지 않습니다. 

적을 이기려고 한다거나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애쓰는 일도 없지요. 

 

무엇을 모아두거나 내주거나 하는 일을 

따로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프라즈나(Prajna)’, 

 상황을 있는 그대로   있는 

반야(般若) 바라밀입니다. 

초연한 앎이라고 할까요.

 

 

 

그러기에 열린 길의 중심 주제는 

우리가 에고를 위한 투쟁을 

포기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완전히 열어놓기, 

자기 자신을 절대 신뢰하기, 

 

 

이것이 자비와 사랑의 

진정한 의미인 거예요. 

 

세상에는 사랑과 평화에 대한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사랑을 

진짜로 실현할  있을까요? 

 

그리스도는 

 이웃을 사랑하라 했지요. 

 

그런데 

 사랑을 어떻게 하느냔 말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을 인류에게, 

 세계에 펼치고 있나요?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한다. 

 그것이 진리다!” 

 

사랑하지 않으면 너는 정죄받아 

 마땅한 악을 편들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면 

 너는 옳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좋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랑을 하느냔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사랑에 아주 낭만적이 되어 

 아름다운 사랑을 합니다. 

 

그러나 

 격조 높은 사랑을 계속할  없게 하는 

변수가 생기게 마련이지요. 

 

털어놓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것을 덮어버리고 

그것에 대해 잊으려고 합니다. 

 

그러고는 

 다른 사랑의 폭발을 찾아 나서지요. 

 

부정하고 싶은 자기 자신이나 

상대방의 모습에는 

애써 눈을 감고, 

  덕스럽고 사랑스럽고 

친절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겁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이 실망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사랑이란 

그렇게 아름답고 낭만적인 

경험만은 아닙니다. 

 

사랑은 

 세상의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추함, 아픔, 공격성 따위와도 

깊게 연루되어 있어요. 

 

그것은 

천당의 오락이 아니란 말입니다. 

 

 

사랑 또는 자비는 열린 길로서 

있는 그대로 사물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랑─우주적 사랑, 

보편적 사랑, 

또는 다른 무슨 이름으로 부르든 간에─을 전개하기 위해서 사람은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빛과 어둠, 선과 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지요. 

 

 

자신의 삶에 자기를 열어놓고 

그것과 막힘 없이 통해야 합니다. 

 

 

어쩌면 당신은 

사랑과 평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그것들을 성취하기 위해 

지금 싸우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군요. 

 

우리는 지금 사랑의 교리를  세계에 퍼뜨리기 위해 수천 달러의 돈을 쓰고 있소.” 이렇게 말하면서 말입니다. 

 

좋습니다. 사랑을 퍼뜨리세요. 계속하시라고요. 돈도 쓰세요. 그러나 그러는 당신 뒤에 버티고 있는 성급함과 공격성은 어떻게 하지요? 

 

어째서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라고 

우리를 밀어붙이는 겁니까? 

 

 그토록 

성급하고 억지스러워야 하는 건가요? 

 

만일 당신의 사랑이 

남들의 증오에서 보이는 

성급함과 공격성을 그대로 보여준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  없습니다. 

 

그것은 

어둠을 빛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사랑에는 

너무 많은 열망이 들어 있어서 

누군가를 전향시키려는 태도를 보이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열린 상황이 아니지요. 

 

 

 땅에 평화를!” 

 

 

 말을 제대로 실천에 옮기는 길은 

평화니 전쟁이니 하는 관념을 

모두 치워버리고 

 

세상의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에 

똑같이, 

그리고 철저히 당신 자신을 

열어놓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중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거기에는 빛도 있고 어둠도 있는데, 

 둘을 함께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럴  

 

당신은  이상 

어둠을 반대하며 

빛을 옹호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 마음 공부에 관하여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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