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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

내가 없는데

물고기의 눈을 닮은 목탁처럼

 

 

 

대중들을 볼 때마다 불현듯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안쓰러움이 올라옵니다. 그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보면서 느끼는 측은지심이 아니라 같은 사람으로서 살아온 세월에 대한 아픔 같은 안쓰러움입니다.

 

얼마 전 생애를 같이한 도반의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온 사람들일 망정 그 내면을 들어다보면 다들 소설 한편을 쓰고도 남을 나름의 스토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일제를 거치고, 6.25 전쟁을 거치면서 가난을 업처럼 살아왔던 우리 부모님 세대는 어느 누구 하나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늘날의 선진국대열의 나라를 만든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도반 아버님도 영화 ‘국제시장’에서 나온 것처럼 그 세대들이 겪었던 아픔을 겪었던 분입니다. 단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자녀들이 대체로 남부럽지 않을 만큼 잘 되었고, 당신 재산도 충분하게 가지고 계셨는데에도 말년을 즐기시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등골이 휘도록 일만 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 남은 자식들을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물론 일이 좋아서 그랬다면 당신이 좋아서 한 일이니 할 말이 없겠지만 나이 드셔서 수술을 한 뒤에 쉬셔야 하는데 쉬시지도 못하고 여든이 넘은 나이에 그 업 같은 농사일을 감행하셨다가 그렇게 되신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일만하셨는지....? 

혹시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그랬는지....? 

그래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자식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물려주려고 그랬는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농사일로 힘들게 사신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과 아픔을 자녀들은 죄인처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 도반의 말대로 




마치 인생을 사기 당한 것처럼 허망하고 한편으로는 

기가 막혀 삶의 회의를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인생은 

사기당한 것처럼의 직유가 아니라 

인생 자체가 사기라는 것입니다.




사기꾼들은 사기를 칠 때 달콤하고 희망적인 말로 유혹합니다. 그 유혹적인 말에 사람들은 속아서 재산을 탕진하기도하고 몸과 마음을 망치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들은 내 아이가 정말 훌륭하고 위대한 인물이 되리라 기대를 하며 자식을 키웁니다. 인생이라는 유혹과 희망이라는 유혹에 빠진 것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아이가 점점 커갈수록 희망은 조금씩 조금씩 깍기기 시작하면서 꿈도 작아지고, 현실적으로 취업을 할 나이가 되면 이제 제발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이 역시 청년이 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만 돈을 더 벌면, 조금만 높이 올라가면 인생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러면 너는 아름다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우리들의 삶은 우리를 달콤한 말로 유혹합니다. 

 

하지만 인생은 나아지지가 않습니다. 많아지고, 올라가면 또 다른 욕심이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죽음을 맞이해야 그 유혹이 끝이 나는 것이 인생입니다. 

 

설령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을 하고 어떤 위대한 일을 했다고 해도 그 일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잊혀지고 맙니다. 영원히 존속되는 일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속고, 속아서 사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결국 인생은 

사기라는 말로 표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것은 세간적인 인생이야기 이지만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가 인생을 이야기해도 

결국 인생은 사기입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인생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삼법인을 속된 말로 풀어쓰면 ‘인생은 원래 사기이니 거기에 속지 말라’는 표현과 같습니다. 우선 삼법인의 일체개고(一切皆苦)을 보면 ‘중생들의 삶은 본래부터 모두가 고통스럽다’는 표현으로, 사람들의 삶은 원래부터 고통스러운 것인데 고통인 줄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통스러우면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데, 고통 속에 있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경계를 말함입니다. 즉 사기를 당하고 있음에도 자기가 사기를 당하고 있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행무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제행무상이란 ‘모든 것이 영원한 것이 없으니 영원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생이 영원한 줄 압니다. 내일 곧 죽어도 오늘 더 가지려고, 남보다 더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며 살아갑니다. 

 

인생이 끝이 있고 

죽을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고 

그렇게 선각자들이 외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제행무상이란 

모든 것이 소용없음을 깨닫고, 

인생이 영원할 것이라는 것에 속지 말라는 

부처님의 간절한 말씀입니다.



삼법인의 마지막 제법무아도 내가 있다는 사기에 속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제법무아란 모든 것이 ‘아’(我)가 없다는 말인데 사람들은 내가 존재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만법은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가는 것이기에 

상(相) 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무상(無相)은 즉 공(空)입니다. 

따라서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있다고 믿고 있으니 사기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기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처럼 불교의 삼법인을 속되게 풀어쓰면 

‘인생은 사기이니, 거기에 속지 말라’는 표현입니다.



우리 인생의 사기꾼의 주범은 탐진치입니다. 욕심에 속고, 화를 내지 않아도 될 일을 마음에 속아 화를 내여 일을 그르치고, 어리석음에 속아 우리 인생이 한평생 괴롭습니다. 

 

탐진치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우린 인생의 삼독(三毒)입니다. 그것들은 우리 곁에 있으면서 늘 위협적인 말로 유혹합니다. ‘더 벌어야 해’ ‘더 있어야 해’ ‘더 높이 올라가야해’ ‘지금 당장 화를 내야 해,’ ‘아주 좋은 것이 있어.’ 등등 한평생 동안 우리를 달콤한 말로 유혹하거나, 협박하거나, 위협하여 두려움 속에 우리를 가두어 놓으려합니다. 우리는 그 말에 속아 괴로움 당하며 살아갑니다. 이 사기꾼에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탐진치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지혜의 눈으로 인생을 바라 보아야합니다. 




우리 인생이 원래 

빈 것(空)임을, 

무상(無相)임을, 

무주(無住)임을, 

무아(無我)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불교의 지혜입니다. 거창한 팔만 사천 법문이 무상(無相), 무주(無住), 무아(無我)에 다 들어있습니다. 더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무아(無我)’ 한 단어만이라도 똑바로 알고, 생활 속에서 그 무아(無我)를 실천한다면 인생에 사기 당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없는데 

욕심 낼 것이 무엇이 있고, 

성낼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푸시킨은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라고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활에 속는 것에 슬퍼하고 노여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생에 사기당한 것에 슬퍼하고 노여워하여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청청하게 살려고 노력해야하고, 

물고기의 눈을 닮은 목탁처럼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지혜의 눈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인생에 사기를 당하고 

 

또 세세생생 윤회의 속박에서 

살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흔들림 속에 고요함이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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