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문 |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한 부처나 두 부처나 셋, 넷, 다섯 부처님께 선근을 심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천만 부처님 처소에서 모든 선근을 심었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한 생각에 청정한 믿음을 내는 사람이니라.
해설 |
마음 안에서 보리심을 일으킨 바로 이 사람
만인을 부처님으로 대하여 선근을 심는다.
나를 괴롭히는 이도 부처님
나를 기쁘게 하는 이도 부처님.
여기에서 ‘이 사람’을
자기 말고 다른 데서 찾으면 안 된다.
자기 마음 안에서 보리심을 일으킨 그 마음이다.
발보리심이 분명하면 육근이 청정해지고,
육근을 청정히 하면 그 마음이 칠보로 장엄되어
이름 하여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선근을 심었다’ 하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전생에 어떻게 마음을 쓰고 선근을 심어서 지금 이렇게 부처라는 이름을 얻었고, 나는 지금 어떻게 마음을 써서 내일 이와 같은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전생이란 지금 나오는 이 마음이고
내생이란 지금 쓰는 이 마음으로 오직 이 마음뿐이다.
부처님은 본생담에서
쥐도 되고 사슴도 되고 마구니도 되고 선인도 되고
헤아릴 수 없는 모습으로 바뀌어 돌고 돌아오셨다.
하지만 모습이 어떻든 간에 한결같이 보살과 같은 마음을 쓰신 까닭에 지금 부처를 이루셨다. 쥐의 모습을 하고서도 쥐의 업식에 물들어서 마음을 쓰지 않고 보살로서 마음을 쓰셨고, 축생의 모습을 하고서도 축생의 업식에 물들어서 마음을 쓰지 않고 보살로서 마음을 쓰셨다. 범부들은 어떻게 마음을 써서 지금 중생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는가?
우리의 마음속에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수라ㆍ천상의 마음이 끝없이 번갈아 가면서 나오는 것이 우리의 한량없는 전생 살림살이다. 그런데 범부들은 독사의 업식이 나오면 독사같이 마음을 쓰고, 아귀의 업식이 나오면 아귀같이 마음을 쓰고, 축생의 업식이 나오면 축생으로 쓰는 까닭에 중생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자기의 마음이 보살로서 마음을 쓰면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선근을 심은 까닭에
이 무위법의 말씀을 듣고 한 생각에
청정한 믿음을 내게 될 것이다.
선근은 어떻게 심는가?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대함이 선근을 심는 방법이다.
누가 나한테 나쁘게 하고 험하게 하면
‘이게 부처님이 나한테 하는 소리구나,
하늘이 나한테 야단치는 소리구나.’
알면 된다. 이렇게 마음 작용을 하는 사람이 수행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누가 나한테 잘 해 주면
‘하늘이 나한테 상을 내리는 거구나,
감사하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부처님이 나에게 주는 상이다.’
라고 알면 된다.
이렇게 마음공부를 하는 것이다. 공부가 깊어지면 저절로 이렇게 된다. 처음에는 저절로 이렇게 되지 않으므로 일부러라도 이렇게 수행해야 한다.
일체가 부처님이라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귀가 좀 열린 사람이요, 수행을 조금 했다는 사람이다. 남의 탓을 하고, 안 보려고 하고, 미워하면 수행은 팽개치겠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하자면
불이법不二法,
둘이 아님을 보아야 한다.
하늘이 곧 부처고 부처가 곧 내 자성이고
자성이 바로 그 자리임을 알아야 한다.
야부 |
금불金佛은 용광로를 건너가지 못하고
목불木佛은 불을 건너가지 못하고
진흙불泥佛은 물을 건너지 못한다.
해설 |
쇠붙이로 만든 부처는 용광로에서 녹아 버리고
나무로 만든 부처는 불에 타 버리고
진흙으로 만든 부처는 물에 풀어져 버린다.
그럼 무엇이 부처인가?
이렇게 소소영령히 아는 그 마음으로 인하여
삼라만상이 모두 밝게 광명을 낸다.
야부 |
삼불三佛의 형상과 거동은 다 진실이 아니고
눈 가운데의 동자瞳子엔 그대 앞의 사람이라.
만약 능히 집에 있는 보배를 믿기만 하면
새 울고 꽃피는 것이 한결같은 봄이로다.
해설 |
물의 본성은 본래 움직이지 않고 고요한 것인데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일어나 만 가지 모습을 나툰다. 삼불의 형상과 거동도 바람으로 인하여 있으니 다 진실이 아니다.
‘눈 가운데 동자는 그대 앞의 사람이라.’ 함은
마음의 거울 위에
만상을 비추어 나투는 것이
모두 한결같이 자기 마음속의 그림자이며
거울 속의 그림자를 보면서 거울의 본체를 깨닫는다.
자성의 거울을 믿기만 하면 일체의 경계가 거울 속의 그림자와 같이 그대로 걸림 없는 법이 되어 자유권을 얻게 된다.
그대 삶이 경전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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