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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

생각이 시작된 곳

생각이 시작된 곳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착한 남자나 여자가 아침에 갠지스 강의 모래알만큼 많이 보시하고, 낮에도 그만큼 많이 보시하고, 저녁에도 그만큼 많이 보시하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애를 거듭하는 동안 계속 그렇게 보시한다고 하자. 또 다른 사람이 열린 마음으로 이 경전의 말씀을 듣고 가슴에 새긴다고 하자. 이 사람의 공덕이 앞사람의 공덕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경전을 온전히 체화하여 그대로 사는 사람의 공덕은 얼마나 더 크겠느냐!

 

요컨대, 이 경전은 상상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한없이 귀중하며, 부처는 이 경전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원숙한 사람에게 가르친다. 이 경전의 가르침을 깨닫고 체화하여 그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부처와 같은 자리에 서게 되며, 어디를 가든 부처의 깨달음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우주의 모든 존재에게 가장 깊은 존경을 받을 만하다.”

 

   

 

모든 생각은 생각이 시작된 곳으로 돌아갑니다. 어떤 생각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심한 망상이라도 붓다는 그 생각을 알아보고, 그 생각을 다시 탐구로 데려갑니다. 이는 마치 붓다가 생각들을 거대한 깔때기에 넣으면, 모든 생각이 소용돌이치며 깔때기를 따라 내려가서 가장 단순한 요소가 되어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붓다는 같은 일을 거듭거듭 되풀이합니다. 그는 같은 일을 되풀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에 고통처럼 보이는 것이 있는 한, 붓다는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사람들이 고통을 끝내도록 돕습니다. 고통이 붓다들을 생겨나게 합니다. 고통이 없는 곳에는 붓다가 없습니다. 붓다가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붓다의 마음에는 사실 붓다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붓다 마음이란 단순히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 마음입니다. 그것은 마음이 자기의 참된 본성으로 돌아오도록 인도한 마음입니다.

 

이 단락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는 붓다는 마치 저녁에 집 앞에 나와서 밥 먹으라고 아이를 부르는 어머니 같습니다. “집에 돌아오렴! 저녁 먹을 시간이야! 들어와, 어서 들어와!” 아이는 거리에 나가 노느라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넘어지고 무릎이 까지고 싸웠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어둠 속에서 길을 잃어 겁을 먹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때 멀리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제 아이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압니다. 붓다는 그런 어머니처럼 집 앞에 서서 아이를 기다리며 아이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고 또 부릅니다. 붓다는 자신이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를 기억하고, 길을 잃고 헤맨다는 것이 무엇이고 발견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이해합니다. 그는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을 늘 부르고 있습니다. 붓다는 한 명의 길 잃은 아이를 위해 천 년이라도 기다립니다.

 

질문된 마음은 본성이 친절하며, 자기 자신과 절대로 다투지 않습니다. 마음의 본성과 다른 것―부정적인 관념, 방어하거나 거부하거나 저항하는 생각―이 나타날 때, 마음은 자기의 깨달은 자아로부터 분리되어 나갑니다. 그 마음은 자기 아닌 것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게 되고, 자기 아닌 것이 되기 위해, 결코 될 수 없는 어떤 무엇이 되기 위해 애를 씁니다. 

 

마음이 자기 아닌 다른 것을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는 순간, 그것은 하나의 것, 하나의 몸, 하나의 ‘나’로서 갇히게 됩니다. 반면에 자신의 본성을 이해할 때, 마음은 중단 없이 흐르는 기쁨이 됩니다. 마음이 어떤 것을 창조하는 것처럼 보일 때 마음은 지켜보지만, 그 어떤 것을 결코 자기 자신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마음은 가질 것도 없고 될 것도 없음을 깨닫습니다. 마침내 마음은 자기가 시작이고 끝임을, 자기는 태어난 적이 없으며 죽을 수도 없음을 깨닫습니다.

 

평화는 초대받을 때만, 당신이 초대할 때만 옵니다. 평화가 당신의 목표라면, 탐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위대한 경전들은 ‘무엇’―자유롭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을 설명합니다. 

 

‘작업’은 ‘어떻게’를 말합니다. 깨어난 마음으로 곧장 들어가는 길을 알려 줍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려 애쓰며 몇 년을 소비합니다. 하지만 ‘작업’을 하게 되면,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은 자기의 문제가 무엇인지―스트레스 주는 생각을 믿는 것이 문제임을―이미 알고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 스트레스를 주는지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맨 처음 떠오르는 생각을 고르기만 하면, 그것이 당신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생각에 질문하면, 당신에게 문제였던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밝혀집니다.

 

   

 

 당신의 아름다운 세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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