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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

멈추고 인간으로 산다면



‘비교의 장벽’을

 깨뜨려라

 

  

     

 

온전한 전체를 살아야 한다는 말에는 비교의 뜻도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우열을 가리기 위해 비교하라는 뜻이 아니라 현란한 겉모습을 꿰뚫어 그 속에 감추어진 본질을 찾으라는 뜻이다. 

 

합일(合一)이라는 개념 속에는 높고 낮음의 구분도 있지만 높음과 낮음의 개념 자체가 없기도 하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이런 이치가 잘 표현되어 있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사람들은 늘어나는 것을 좋아하고 줄어드는 것을 싫어한다. 돈이 많아지고 직위가 올라가고 명예가 높아지면 기뻐하고 반대면 슬퍼한다. 그런데 노자는 



어떤 사물이든 

때로는 줄어드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늘어나는 것이고, 

때로는 늘어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줄어드는 것이다



화는 복에 기대어 있고 복은 화 속에 숨어 있다”고 한 노자의 말은 유명하다. 재앙 속에 행복의 싹이 숨어 있고 행복 속에서 재앙의 싹이 움트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당장의 화가 반드시 화인 것도 아니고, 

눈앞의 복이 반드시 복인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남에게 몸을 낮추는 것을 싫어하지만, 몸을 낮춘 덕분에 재앙을 피하기도 한다. 또 적게 가지면 많이 얻고, 욕심을 내면 오히려 잃을 수 있다. 서로 대립된 개념들이 사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쉽게 뒤집히는 것이다. 

 

이것은 노자의 위대한 발견이다. 하지만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은 이런 대립의 개념에 집착해 늘 초조와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 가장 흔한 것이 성공과 실패다.

 

사회는 우리에게 성공하라고, 실패자가 되지 말라고 끊임없이 강요한다. 하지만 이른바 성공이란 것은 늘어나기만 하고 줄어들 수는 없는 것이다. 

공무원이라면 계속 승진해야 하고, 상인이라면 계속 돈이 불어나야 하며, 학자라면 계속 더 높은 학위를 따고 자기 분야에서 석학이 되어야 한다. 또 배우라면 무명에서 시작해 유명해지고 스타가 된 후에는 다시 몸값이 계속 높아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다. 

저마다 성공이라는 단어를 위해 죽기 살기로 달리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날마다 바쁘게 살아간다. 계속된 회의와 접대에 자기 생활은 하나도 없다. 지위가 올라가고 많은 돈을 벌지만, 이른바 성공이라는 기형적인 즐거움 속에서 살아간다. 고위 공무원이 되는 것이 이른바 권력의 달콤함을 맛보기 위함이고, 돈을 버는 것도 이른바 돈을 버는 쾌락을 누리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런 행복은 굉장히 기형적이다. 그로 인해 가족의 행복을 희생시키고 개인의 자유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의 존엄성마저 잃는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높은 직위에 올라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날마다 거짓말과 허풍을 일삼고,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그 돈을 지키기 위해 날마다 접대를 해야 한다.

 

공직으로 진출할 수도 있고 사업을 할 수도 있다. 또 권력과 부를 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가정, 사랑, 자유, 존엄과 같은 인간의 근본적인 행복을 해친다면, 차라리 성공하지 않고 청소부로 살더라도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누리며 자유롭게 사는 것이 낫다.

 

이런 합일의 이치를 안다면, 

 

이른바 성공과 실패라는 것이 

영원한 성공도 없고 영원한 실패도 없으며, 

불변의 성공도 불변의 실패도 없음을 깨달을 수 있다. 

성패 이외에 

더 넓은 인생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자유로운 인생이 수없이 많이 있는데 굳이 성공의 길에만 매달려 죽기 살기로 달릴 필요가 있을까? 그 성공의 길 위에서 사랑과 존엄을 잃어버릴 필요가 있을까? 



멈추고 인간으로 산다면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 해도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고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킬 수 있다. 그것 외에 또 무엇이 필요할까?

 

세상에 사는 것은 각기 다른 부분에 사는 것이다. 성별이 다르고 신분이 다르고 지역이 다르며, 종교도 사회도 각각 다르다. 



이런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문제될 것이 없다.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인정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자아를 똑바로 바라보면 

 

우리가 이런 다름과 차이 중 어느 하나에만 집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집착이 자기 자신을 곤경에 빠뜨린다. 다름과 차이 중 어느 하나에만 집착하면 인간관계에 다툼이 생기고 서로 원망하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수없이 마주치는 모순, 충돌, 곤경이 대부분 이런 편견에서 비롯된다.

 

편견은 생활을 편협하게 만들고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 그러므로 곤경에 처했다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자기 생각을 들여다보라. 생활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관념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또 타인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겼다면 자기 생각을 관찰해 보라. 서로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는 자기 생각에 문제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언제 어디서든 합일의 이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은 하나이며 둘일 수 없다. 

생겨남도 사라짐도 없고, 

더러움도 깨끗함도 없고, 

늘어남도 사라짐도 없다.

 

분리된 듯 보이는 것들 속에서도 온전히 하나로 살 수 있다. 우리의 마음가짐을 바꾸기만 하면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서, 성공과 실패 사이에서,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자유자재로 오가며 살 수 있다. 

 

그렇다. 

나는 선생이기도 하고 

운전수이기도 하며 

또 다른 신분도 가지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아무 것도 아니기도 하다. 

나는 그저 존재할 뿐이다.

 

존재는 온전히 하나다. 생겨나면 반드시 사라지고, 건강함이 있으면 반드시 병에 걸릴 때도 있고, 행복이 있으면 반드시 불행도 있으며, 성공이 있으면 반드시 실패도 있다. 인생을 살면서 이것만 갖고 저것은 버릴 수는 없다.

 

수많은 베스트셀러와 학교에서 우리에게 성공하라고, 행복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어떤 책도, 어떤 학교에서도 사람의 행복감을 늘려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람의 좌절감과 불행만 커진다. 

 

성공이든 행복이든 그 단어들이 요구하는 것은 존재의 한쪽 면에만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쪽을 잊고 오로지 하나만을 위해 전력 질주하는 인생은 온전한 인생이 될 수 없다.

 

사람이 수행하고 깨닫는 것은 천천히 바다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렇다. 존재는 바다와 같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어느 한쪽을 향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광활한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좁고 음침한 도랑에서 살지 말고 

끝없이 넓은 바다에서 살라. 

성공이든 행복이든 

인생의 수많은 모습 중 하나일 뿐이다. 

그것들을 추구할 수는 있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온전한 인생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행복에 대한 어리석은 망상이자 행복의 비결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고, 성공만을 받아들이고 실패를 버리라고 우리에게 요구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즐거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상황을 온전한 인생으로 받아들이고 누려야 한다. 

 

맑은 날에는 햇볕을 누리고, 

비 오는 날에는 비바람을 누린다면 

불행함도 사라질 것이다.



  진정으로 즐거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모든 상황을 온전한 인생으로 받아들이고 누려야 한다.

 

  맑은 날에는 햇볕을 누리고, 

 

  비 오는 날에는 비바람을 누린다면

 

  불행함도 사라질 것이다.

 

 

  평생 걱정 없이 사는 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