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옭아매는 것은
오직 내 마음뿐이다
부처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고 했다. 보시를 할 때도 집착을 버리고, 보시를 하면서도 자신이 보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로 인해 무한한 복덕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다음, 부처가 수보리에게 또 물었다.
“수보리야, 동쪽 허공이 얼마나 넓은지 상상할 수 있느냐?”
수보리가 동쪽을 쳐다보았다. 아마 그의 눈에 보인 것은 다른 사람들과 기둥, 벽이었을 것이다. 그 이상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서 그곳이 끝인 것은 아니었다. 벽 너머에 숲이 있고, 숲을 지나면 큰길이 있고, 큰길은 바다로 향하고, 바다가 수평선까지 흐르고도 더 동쪽으로 가면, 아득한 우주가 펼쳐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수보리가 대답했다.
“상상할 수 없사옵니다.”
부처가 남쪽, 북쪽, 서쪽에 대해 차례대로 물어보자, 수보리는 곧 선정에 들어가 남쪽, 북쪽, 서쪽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보이는 것은 무한한 광활함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떤 방향이든 모두 헤아릴 수 없다고 대답했다.
부처의 물음은 그저 비유였지만, 언제 어디서든 마음을 수행하는 방법을 알려 준 것이기도 했다. 아무리 좁은 곳에 있어도 선정을 통해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 무한한 광활함을 볼 수 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든, 혼자 거실에 앉아 있든, 따분한 회의실에 앉아 있든, 거리를 걷고 있든, 언제 어디서든,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보라.
눈으로 보고,
마음을 통해 무한히 넓은 공간을 느끼고,
자신과 함께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사물을 상상해 보라.
이런 상상과 관조는 마음을 탁 트이게 하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천지만물의 진정한 모습이
우리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닐 수도 있으며,
우리 눈으로 볼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사람의 육신은 부엌, 사무실, 교실 같은 좁은 공간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 차, 상점 같은 인공적인 공간 사이를 돌아다니고, 직장과 가정 사이를 오간다.
하지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세상이 이곳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말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낀다”
고 말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공간 외에도 광활한 세상이 펼쳐져 있다. 반드시 시간과 돈이 있어야만 이 좁은 울타리에서 빠져나가 더 넓은 세상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로가 금강경을 읽어 보았을 리는 없지만, 그의 생각은 부처의 말과 완전히 일치한다. 소로는 말했다.
시선을 마음속으로 돌리면
마음속에서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천 개의 공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이다.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 소로의 말을 생각해 보라. 세상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보다 훨씬 넓은 세상이 펼쳐져 있다.
부처가 수보리에게 동서남북을 상상하게 한 대목을 떠올려 보아도 괜찮다. 수보리는 상상만으로 동서남북 사방이 헤아릴 수 없이 넓다는 것을 알았다.
라마교 밀종의 가장 기초적인 수련법인 ‘관십방허공(觀十方虛空)’도 이와 비슷하다.
어느 곳에 있든
좁은 점 속에 갇혀 있는 듯 갑갑하다면,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허공을 응시하며
사방을 둘러보라.
모든 사물이 그 허공 속에 있다.
자신이 머물러 있는 공간 외에 헤아릴 수 없이
넓은 세상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다.
나를 옭아맬 수 있는 것은 자기 마음, 바로 이 한 가지 외엔 없다.
어느 순간 갑갑함을 느낀다면,
고개를 들어 허공을 응시하라.
내가 머물러 있는 공간 너머로
드넓은 세상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깨달아라.
나를 가두는 것은 오직 내 마음뿐이다
초조하지 않게 사는 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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