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다거나 다르다는
견해를 떠나야 한다
이(理)와 사(事)가 원융하게 소통되어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어서 변견(邊見)·사견(邪見)에 떨어지지 않아야 비로소 깨달아 들어갈 수 있다.
변견은
‘내 몸이 있다’고 아견(我見)을 일으킨 위에, 내가 죽은 뒤에도 항상 있다든가[常], 아주 없어진다든가[斷] 하는 어느 한 편에 치우친 견해를 말한다.
사견은
주로 인과의 도리를 무시하는 견해를 말한다. 온갖 망견(妄見)은 정리(正理)를 어기는 것이므로 사견이라 하는데, 특히 인과의 도리를 무시하는 것은 그 허물이 중대하므로 사견이라 한다.
이(理)는 분한(分限)이 없으므로
총체적으로 무변(無邊)이라 하고,
사(事)는 분한이 있으므로
유변(有邊)이라 한다.
만약 이법(理法)에 의지해 사법(事法)을 이루어서
이치의 성품이 완전히 감춰지면 무변이 그대로 유변이고,
사법이 모여서 이법으로 돌아가
현상의 모습이 완전히 없어지면 유변이 그대로 무변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아 이법을 잃지 않고 사법이 나타나므로 무변의 유변이라 하고, 사법을 무너뜨리지 않고 이법이 나타나므로 유변의 무변이라 한다.
만약 같다·다르다, 같지 않다·다르지 않다, 같지 않은 것도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 단정하여 말한다면 모두 희론과 같은 것이어서 진여에 계합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희론이 없기 때문에 진실(眞實)이라 한다. 희론이 없다는 것은 상(相) 등에 대해서 같다거나 다르다고 하는 허망한 견해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중략)··· 만약 진여(眞如)가 상(相) 등과 다르다면 세 가지 잘못이 있다.
첫째, 이 진여는 상 등의 실체가 아니게 된다.
둘째, 관행(觀行)을 닦으면 상 등을 의지하여 방편으로 삼지 않고도 진여를 통달할 수 있게 된다.
셋째, 진여를 깨닫고도 상 등의 모든 법을 통달하지 못하게 되니, 서로 상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진여가 상 등과 같다고 해도 세 가지 잘못이 있다.
첫째, 진여에 이미 차별이 없으므로 상 등에도 차별이 없다.
둘째, 상 등을 볼 때 그대로 진여를 보게 된다.
셋째, 진여가 상 등과 같이 청정하지 않다고 본다면 성인도 없고 해탈도 얻을 수 없으며, 열반도 없고 세간과 출세간의 다른 점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같다거나 다르다는 등의 견해를 떠나 희론이 없기 때문에 변이(變異)가 없고, 변이가 없기 때문에 바로 진실한 성품이다.”
이로써 이(理)와 사(事)는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고 공적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종경의 깊은 종지는
자재(自在)하고 원융(圓融)하다.
이것은 같게 하려면 같아지고 다르게 하려면 달라지며,
있게 하려면 있고 없게 하려면 없어진다.
다른 것이 같은 것을 장애하지 않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을 장애하지 않으므로 자재라 하며,
항상 같으면서 항상 다르고,
항상 있으면서 항상 없으므로
원융이라 한다.
또 구슬방울을 가지고 재주를 부릴 때 그 구슬이 공중에 머물지도 않고 땅 위에 떨어지지도 않으며 손안에 있지도 않아, 세 곳에 있지도 않고 한 곳에 머물지도 않는 것과 같다.
공중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공관(空觀)에 머물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고, 땅위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가관(假觀)에 머물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고, 손안에 있지 않다는 것은 중관(中觀)에 머물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다. 이미 세 가지에도 머물지 않고 또한 한 가지도 성립시키지 않는다면 하나도 아니고 셋도 아니면서 셋도 되고 하나도 되니,
이것이 현묘한 이치이다.
만약 이와 같은 종지를 만나지 못한다면 보고 듣는 것이 모두 단견이나 상견에 떨어져 현묘한 것이 되지 못하나, 만약 종경에 깨달아 들어간다면 가는 곳마다 진실 아닌 것이 없으니 옛날에 알지 못했던 것을 이제 알게 되고, 옛날에 보지 못했던 것을 이제 보게 된다.
명추회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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