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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

그 자리가 바로 고요한 것

전하는 말에 

 

“활짝 깨달으면 부처와 같으나 여러 생의 습기가 깊은지라 바람이 멈추어도 파도는 여전히 솟구치고 진리가 나타나도 망념은 아직도 침입한다” 하였으며,



또 종고(宗杲)선사께서 

 

“간혹 영리한 무리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이 일을 깨닫고는 문득 수월하다는 생각을 내어 더 닦지 않고는 날이 깊어지면 전과 똑같이 떠돌아다니다가 윤회를 면치 못한다”

 

하셨으니 어찌 잠시 깨달은 바가 있다 하여 다시 닦는 일을 던져 버리리요?

그러므로 깨달은 뒤에 



오래오래 밝히고 살펴서 

망념(妄念)이 일어나거든 도무지 따라가지 말지니, 

덜고 또 덜어서 더 할 것이 없는데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전하리니, 



천하의 선지식(善知識)이 깨달은 뒤에 목우행(牧牛行)을 한 것이 이 까닭이니라.

 

비록 나중에 닦는다고는 하나 

망념이 본래 공하고 

심성(心性)이 본래 맑은 줄 먼저 이미 깨달았으므로 

악을 끊되 끊는 것이 없고, 

선을 닦되 닦는 것이 없나니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닦고, 참으로 끊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비록 만행(萬行: 갖가지 수행)을 골고루 닦는다 하여도 오직 무념(無念)으로 조종(祖宗)을 삼는다” 고 말씀하셨느니라.

 

 

규봉도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뜻을 총괄하여 말하기를, 

 

“이 성품은 본래 번뇌가 없으며, 무루지혜[無漏智]의 성품이 본래 구족되어 있어서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활짝 깨닫고, 이에 의하여 닦는 것을 최상승선(最上乘禪)이라 하고, 또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이라 부르며, 생각마다 닦아 익히면 백 천 삼매를 자연히 차츰 차츰 얻게 되리니, 달마(達磨)의 문하에서 대대로 전한 것이 이 선법(禪法)이니라” 하셨다.

 

활짝 깨달은 뒤에 차츰 닦는 도리가 수레의 두 바퀴 같아서 하나가 없어도 안 되느니라.

 

어떤 이는 선과 악의 성품이 공한 줄 알지 못하고 굳이 앉아 움직이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억누르는 것으로 마음 닦는 일이라 하니, 이는 큰 잘못이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성문은 생각마다 미혹을 끊으나 끊으려는 그 마음이 바로 도적이라” 하시니 살생, 투도, 음행, 망어가 성품으로부터 일어나는 줄로 자세히 관찰하기만 하면 일어났으되 일어난 것이 없음이라, 



그 자리가 바로 고요한 것이니 

어찌 다시 끊으려 하리요?



그러므로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 말고, 

 오직 깨달음이 늦는 것만을 두려워하라” 하셨으며,

 

또 말씀하시기를 

 

“망념이 일어나면 곧 깨달으라. 

 깨달으면 곧 없어진다” 하셨으니,

 

깨달은 사람의 처지에서는 객진번뇌(客塵煩惱)가 있으나 모두 제호(醍醐 : 최상의 맛)가 되느니라. 다만 미혹의 근본이 없는 줄 알면 허공꽃(空華) 같은 삼계도 바람이 연기를 걷어 버리듯 하고, 



허깨비(幻化) 같은 육진(六塵)이 

끓는 물에 얼음 녹듯 하더라.

 

 

만일에 이와 같이 생각마다 닦아 익히어 비춰 살피기를 잊지 않아, 정(定)가 혜(慧)를 균등히 지니면 사랑도 미움도 자연히 얇아지고 자비와 지혜가 자연히 늘어나며 죄의 업이 자연히 끊어 없어지며 공덕과 수행이 자연히 두터워지리니, 번뇌가 다할 때에 생사가 바로 끊어지리라.

 

만일 미세한 번뇌(流注)가 영원히 끊어지고 

원각의 큰 지혜가 오롯이 밝아지면 

즉시에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을 나타내어 

시방 국토에 근기 따라 감응하되, 

 

마치 달이 중천에 밝으면 

그림자가 온갖 물에 나뉘어 비치듯 

쓰이는 곳에 따라 무궁무진하여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되 

즐거워 근심이 없으므로 

이름하여 대각 세존이라 부르느니라.

 

 

     보조국사 수심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