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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이야기

마음의 구속이 없으면

 

 

 


생명의 진상(眞相)에 달통한 자는

생명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힘쓰지 않고,

천명의 진상에 달통한 자는

지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힘쓰지 않는다.


육체를 기르는데는 반드시 의식(衣食)을 제일로 친다.

그러나 그런 의식이 남을 정도로 있어도 육체를 기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또 생명이 있는 이상에는

반드시 육체를 유지하는 것을 제일로 한다.

그러나 육체는 존재하면서 생명을 잃는 경우가 있다.


생명이 생겨나는 것을 물리칠 수도 없고,

또 생명이 가버리는 것을 멈추게 할 수도 없다.

그러니 슬프도다.


 

지금 세상사람들은 형체만 기르면

생명을 보존할 수가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형체만 길러서는

결국 생명을 보존할 수 없다면

세속의 일이 무슨 만족할 만한 가치가 있겠는가?

 

행하기에 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육체를 기르는 속념으로부터 떠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육체를 위하여 허덕이는 것을 면하고자 하면

세속의 행위를 버리는 것만 같지 못하다.

 


세속의 일을 버리면

마음의 구속이 없게 된다.

마음의 구속이 없으면

마음이 바르고 편해진다.



마음이 바르고 편해지면

저 자연의 조화와 더불어

날로 새로이 무한한 생명을 얻게 된다.


 

 

 

 

날로 새로이 무한한 생명을 얻게되면

지극한 도에 가까와 진다.


속된 일을 어째서 버려야 하고,

속된 생명은 어째서 버려야 하는가?


속된 일을 버리면 형체가 수고롭지 않고

속된 생명을 버리면 정신이 이지러지지 않는다.

 

대체로 형체가 온전하고 정신이 회복되면

천지의 조화로 일체가 된다.



천지는 만물의 부모이다.

천지의 두기운이 서로 합하면

만물의 형체를 이루고

그 두기운이 흩어지면 원시로 돌아간다.


 

형태와 정신이 이지러지지 않는 것을

자연과 함께 추이(推移)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精)에 정(精)을 거듭하면

돌아가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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