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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

세상사 모두가 꿈

 


비유컨대 꿈에서 강을 건너는데

 

뱃사공이 하북 땅에 건네 주었으나

 

홀연히 꿈을 깨니 침상 위에서 편안히 자고 있었으니

 

뱃사공과 배와 강을 건너는 일이 다 없음이라.

 

뱃사공과 강을 건너는 사람

 

두 사람 모두 서로 알지 못하도다.

 

 

比如夢裏渡河

船師度過河北

忽覺床上安眠

失 却 度 船 軌 則

船師及彼度人

兩箇本不相識

 

 

 

인생을 꿈이라고 생각하여 그 꿈에서 깨어나 사는 것을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경지라고 한다.

 

선지식이 미혹한 중생을 가르쳐서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였을 때 꿈을 깨고 보면 실로 깨닫게 해 준 선지식도 미혹에 빠졌던 중생도 본래 없다.

 

행행본처(行行本處)요

지지발처(至至發處)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가고 가도 본래의 그곳이며

이르고 이르렀다 해도

역시 출발한 그곳이라는 뜻이다.

 

 

 

 

알고 보면 우리 인생도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했다 하더라도 본래의 그 사람일 뿐, 달리 다른 사람은 없다.

 

설사 어떤 특별한 경지에 도달하였다 하더라도 그 경지에 이르려고 하던 그 자리일 뿐이다.

 

 

 

중생이 미혹하여 얽히고설켜서

 

삼계에 가고 오느라 피로가 심하지만,

 

죽고 사는 일이 꿈과 같은 줄을 깨달으면

 

일체 구하는 마음이 저절로 쉬어 지네.

 

 

衆生迷倒羈絆

 

往來三界疲極

 

覺 悟 生 死 如 夢

 

一切求心自息

 

 

중생의 삶은 깨어 있지 못하고 늘 미혹한 상태로 살아간다.

 

미혹한 상태란 정신이 캄캄해서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이 내키는 대로 산다는 뜻이다.

 

바르고 참된 이치[眞理]와는 거리가 멀다. 바르고 참되지 못한 삶은 여기저기 만나는 일마다 뒤엉키게 마련이다.

 

그렇게 얽혀서 캄캄한 상태로 이끌려 다니다 보면 그 고통과 피로가 어떻겠는가.

 

 

 

그러나 인생사, 세상사가 모두 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구하는 마음은 저절로 쉬어지게 되고 어떤 고통도 사라지고 만다.

 

 

 

마치 꿈속에서 무엇엔가 쫓기어 갖은 애를 다 쓰다가 애를 쓰는 일이 지극하면 꿈을 깨게 되고

꿈을 깨고 나면 꿈속에서의 모든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다.

 

진정한 대승적 삶은

꿈을 깨고 나서 사는 삶이다.

꿈속에서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는 깨고 나서 시골 마을의 이장이 더 낫기 때문이다.

 

 

 

깨달으면 곧 보리다.

 

근본을 알면 차례가 없다.

 

슬프다. 범부들이 비실거리며

 

80이 되어서도 능히 걷지를 못하네.

 

 

悟解卽是菩提

了本無有階梯

堪嘆凡夫傴僂

八十不能跋蹄

 

 

모든 깨달은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지공 화상께서도 사람으로 태어나 더구나 불법을 만난 사람으로서 참되고 바른 이치를 모르고, 꿈속에서 헤매듯 비실거리면서 살아간다.

 

80이 넘도록 진정한 인생을 살지 못하는 그 처지가 안타까워서 하신 말씀이다.

 

 

 

깨달으면 곧바로 보리인데,

 

 

 

아무런 차례도 계단도 순서도 없는 데서 그런 이치를 모르고 한 단계씩 밟아 올라가면 무언가 있는 줄로만 아는 어리석은 불교인의 잘못된 상식을 깨트려 주는 가르침이다.

 

     직지 강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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