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선문禪門

보리와 탐욕

 


<대덕이시여, 당신은 탐욕이 무슨 법이라고 알고 계십니까?>

 

승의비구가 말하였습니다.

 

<저는 탐욕은 번뇌라고 알고 있습니다.>

 

거사의 아들이 말하였습니다.

 

<대덕이시여, 그 번뇌는 안에 있습니까, 밖에 있습니까?>

 

승의비구가 말하였습니다.

 

<안에 있지도 않고 밖에 있지도 않습니다.>

 

<대덕이시여, 만약 탐욕이 안에 있지도 않고 밖에 있지도 않으며, 동서남북·사유(四維)·상하 어디에도 있지 않다면 그것은 생겨난 적이 없는 것입니다. 생겨난 적이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더럽다거나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승의비구는 좋지 않은 얼굴로 화를 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희근비구가 거짓말로 많은 사람을 홀리는구나.>

 

 

 

이 사람은 음성에 들어가는 법문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음성을 들으면 좋아하고 외도의 음성을 들으면 화를 내며, 청정한 행위에서 나오는 소리는 기뻐하고 청정하지 못한 행위에서 나오는 소리에는 화를 냈으니,

 

음성에 들어가는 법문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중략)··· 그때 희근보살이 많은 대중 스님들 앞에서 이런 게송을 읊었습니다.

 

 

탐욕이 열반이고

 

성냄과 어리석음도 그러하니

 

이와 같은 세 가지 독 속에

 

한량없는 부처님 도가 있네

 

 

만약 누군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분별한다면

 

이 사람은 불도와 멀어지리니

 

비유하면 하늘과 땅 차이네

 

 

보리와 탐욕

 

이것은 하나이지 둘이 아니니

 

모두 하나의 법문에 들어가

 

평등하여 조금도 차이가 없네

 

 

범부들 듣고 두려워하며

 

불도와 더욱더 멀어지겠지만

 

탐욕은 생기거나 소멸하지 않으므로

 

마음을 괴롭게 할 수가 없네

 

 

만약 누군가 나라는 마음 있고

 

또 견해를 얻었다는 자 있다면

 

그 사람은 탐욕을 부리는 것이니

 

장차 지옥에 들어가리라

 

 

탐욕의 진실한 성품이

 

그대로 불법의 성품이고

 

불법의 진실한 성품이

 

그대로 탐욕의 성품이네

 

 

이 두 가지 법은 하나의 모습

 

이것이 무상(無相)이니

 

만약 이와 같이 알 수 있다면

 

세간의 길잡이 되리라

 

 

만약 누군가

 

지계와 파계를 분별한다면

 

지계에 속은 까닭에

 

다른 사람들 경멸하리라

 

 

이런 사람에겐 보리가 없고

 

또한 부처님 법도 없으니

 

그저 스스로 안주할 뿐

 

뭔가 얻었다는 견해 속에서

 

 

공한처(空閑處)에 머물며

 

자신을 존귀하다 하고 남을 업신여긴다면

 

천상에도 태어날 수 없는데

 

하물며 보리를 이루겠는가

 

 

공한처(空閑處) : 아란야(阿蘭若)·

아련야(阿練若)로 음역하기도 한다.

마을에서 떨어진 한적한 수행처를 말한다.

 

 

모두 공한처에 집착하고

 

삿된 견해에 머문 까닭이니

 

삿된 견해와 보리는

 

모두 평등하여 차이가 없네

 

 

다만 이름과 글자

 

말 때문에 다를 뿐이니

 

만약 사람이 이것을 통달하면

 

보리에 가까워지리라

 

 

번뇌가 더럽다고 분별하는 것이

 

바로 청정에 집착하는 견해이니

 

불법도 보리도 없는데

 

얻을 것 있다는 견해 속에 머무네

 

 

만약 불법에 탐착한다면

 

그것은 불법과 멀어지는 것

 

걸림없는 무애법을 탐착했기에

 

도리어 고뇌를 받네

 

 

만약 사람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분별없다면

 

3독(三毒)의 본성에 들어가는 까닭에

 

바로 보리를 보게 되리라

 

 

이런 사람 불도(佛道)에 가까워

 

빠르게 무생법인 얻게 되리라

 

 

만약 유위법이

 

무위법과 다르다고 본다면

 

이런 사람 끝내

 

유위법조차 알 수 없으리라

 

 

두 본성이 같은 줄 안다면

 

반드시 사람 중에 존귀한 자 되리니

 

부처님께서는 보리를 보지 않고

 

또한 불법도 보지 않으시네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기에

 

마구니를 항복받고 불도를 성취했으니

 

만약 중생들 제도하고 싶다면

 

그 성품을 분별하지 말라

 

 

일체 모든 중생

 

모두 열반에 함께 있으니

 

만약에 이와 같이 볼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성불이라네

 

 

그 마음 고요하지 못하면서

 

한가로운 모습만 드러낸다면

 

이는 하늘과 인간에서

 

가장 큰 도적놈

 

 

이런 사람에겐 보리가 없고

 

또한 불법도 없네

 

 

나는 미래에 부처가 되리라는

 

이러한 원력을 세운다면

 

이와 같은 범부는

 

무명의 힘에 끌려다니는 자

 

 

불법은 담담하고 청정하여

 

마치 허공과 같으니

 

이 속엔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네

 

 

 

부처님은 불도(佛道)를 얻지 않았고

 

중생을 제도하지도 않았는데

 

범부들이 억지로 분별하여

 

부처가 되어 중생을 제도했다 하네

 

 

이런 사람 부처님 법과

 

아득히 멀어지니

 

만약 중생의 고통을 본다면

 

그 사람이 바로 고통받는 자라네

 

 

중생이란 중생이 없는데

 

중생이 있다고 말하니

 

중생이 있다는 견해에 머문다면

 

보리란 없네

 

 

만약 어떤 사람이

 

중생이 필경에 해탈했음을 본다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없으리니

 

이것을 알면 세상의 장수가 되네

 

 

만약 사람이 중생만 보고

 

중생이 아님은 보지 못한다면

 

불법의 진실 얻지 못하니

 

부처님은 중생과 성품이 같다네

 

 

만약 이와 같이 알 수 있다면

 

세상의 훌륭한 장수 되리라

 

 

     - 명추회요 중에서

'선문禪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사에서 열반  (0) 2019.12.28
심리적 시간  (0) 2019.12.27
바로 지금 여기에  (0) 2019.12.25
자아는 관념일 뿐  (0) 2019.12.24
그대의 성품  (0) 2019.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