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盡)과 무진(無盡)
“경에 이르기를,
‘다함과 다함 없음의 법문’이란
무슨 뜻입니까?”
“두 가지 성품이 공한 까닭에
보고 들음이 나지 않음이 다함이니 / 盡
다함이란 모든 망루(妄漏)가 다함이며,
다함이 없음은 남이 없는 본체 가운데
항사의 묘용*을 갖추고 있어서
* 자유자재한 신통묘용이
항하수강변의 모래알처럼 무한한
일을 따라 응하여 나타나서
모두 다 구족하여
본체 가운데에 손감이 없음을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다함과 다함 없음의 법문인 것이니라.”
問
經云 盡無盡法門如何오
答
爲二性空故로
見聞無生이 是盡이니
盡者는 諸漏盡이요
無盡者는 於無生體中에 具恒沙妙用하야
隨事應現하야 悉皆具足하야
於本體中에 亦無損減이 是名無盡이니
卽是盡無盡法門也니라.
‘남이 없다’라고 하는 것은 / 無生
제8아뢰야식의 미세망념까지 전체가
모두 끊어진 청정자성 자체를 말하는 것이니
일체 망루가 다 끊어지면
청정자성인 진여본성을
보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다함이라고 했습니다. / 盡
일체 망루가 다한 청정자성체 가운데는
항사의 묘용이 갖추어져 있어서
손감이 없으며 불생불멸이기 때문에
미래겁이 다하도록 상주불멸하니
이것을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無盡
곧
자성청정(自性淸淨)이 다함이며
자성묘용(自性妙用)이 다함 없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성청정이 따로 있고
자성묘용이 따로 있느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자성청정 이대로 자성묘용이고
자성묘용 이대로가 자성청정인 것입니다.
“다함과 다함 없음이 하나입니까, 다릅니까?”
“본체는 하나이나 말하면 다름이 있느니라.”
問 盡與無盡이 爲一가 爲別가
答 體是一이나 說卽有別이니라.
“본체가 이미 하나일진댄
어째서 다름을 말씀하십니까?”
“하나라 함은 말의 본체요 / 體
말함은 본체의 작용이니,
일을 따라서 응용하는 까닭에
본체는 같으나
말함은 다르다고 하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천상의 한 해[日] 아래
여러 가지 그릇들을 놓아두고 물을 채우면
하나하나의 그릇 가운데에 모두 해가 있어서,
모든 그릇 가운데의 해가 다 원만하여
하늘 위의 해와 아무런 차별이 없는 까닭에
본체는 같다고 말하는 것이요,
그릇에 따라 이름을 세워서
곧 차별이 있으므로 다른 것이니라.
그러므로
본체는 같으나
말하면 다름이 있다고 하느니라.
그릇에 나타난 모든 해가
모두 원만하여
하늘의 본래 해와 또한 손감이 없는 까닭으로
다함이 없다고 하느니라.”
問
體旣是一인댄 云何說別고
答
一者는 是說之體요
說是體之用이니 爲隨事應用故로
云體同說別이니라.
喩如天上一日下에 置種種盆器盛水하면
一一器中에 皆有於日하야 諸器中日이
悉皆圓滿하야 與天上日로 亦無差別故로
云體同이요
爲隨器立名하야
卽有差別일새 所以有別이니라
故云體同이나
說卽有別이라 하나니
所現諸日이
悉皆圓滿하야
於上本日에 亦無損減故로
云無盡也니라.
그릇에 있는 해나 하늘의 해가
서로 서로 구별이 없는 것이니
같음이 곧 다름이고
다름이 곧 같음이어서
하나와 다름이 원융무애한 것입니다.
- 돈오입도요문론 강설 중에서
있음이 곧 없음이요
없음이 곧 있음이라
분리없음이 하나이고
양변없음이 중도이다.
둘이 아님이 불이이고
불이가 바로 하나이니,
하나는 모두이고 전체이자
같음과 다름도 없는
하나와 다름이니,
다함도 다하지않음도 본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