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이 모두 마음일 뿐이다
물 음
『경(經)』에서 말한
“일체법은 꿈과 같다.”는 것으로써
오직 마음뿐인 것[唯心]을 입증한다면
왜 꿈속의 일은 허망하고 깨어 있을 때의 일은
사실이어서 그 과보가 평등하지 않는가?
법과 비유가 일치하지 않는데 어떻게
증명한다는 것인가?
답 함
비유하여 말한 것은
모두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니,
이를 통해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비유를 따지지 않고 도(道)를 보려고만 한다.
자기 마음을 증득했다면
어찌 방편의 말을 점검하고
원상(圓常)의 이치에 집착하겠는가.
이 꿈의 비유는 법과 일치하니,
그 증험이 가장 적절하다.
『유식론(唯識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외도의 힐문에 대답하였다.
‘꿈속에서 보는 음식과 굶주림과 포만감,
칼과 막대기 그리고 독약 등의 이와 같은
일들이 모두 쓸모가 없고,
깨어 있을 때 보는 이와 같은 일들은
모두 유용하다고 그대들은 말하지만,
이치가 그렇지 않다.
게송(偈頌)으로 말하였다.
마치 꿈속에는 여자가 없는데도
몸을 움직여 부정(不淨)을 누실(漏失)하는
것과 같다
이는 꿈속에서 여자와 사귀어
부정한 정액을 누실하듯,
중생도 이와 같아서
무시이래로 허망하게 빛깔과 향기와 맛 등
바깥의 모든 경계를 수용하지만,
모든 것이 이처럼 실제로는 없는데
성립하는 것이다.’
또 물었다.
‘만약 꿈속에 경계가 없고 깨어서도 그렇다면,
왜 꿈속과 현실에서 선법과 악법을 행했을 때
과보를 받고 받지 않는 것이 평등하지 않은가?’
대답하였다.
‘오직 안의 마음만 있을 뿐 바깥 경계는 없다.
꿈속의 마음과 깨어 있는 마음이라는
차별이 있기 때문에
바깥 경계를 의지하지 않고
선업과 불선업을 성취한다.’”
그러므로
“꿈속에 있을 때의 마음은
수면이 파괴하기 때문에 세력이 열악하고
마음이 약해 선업과 악업을 형성할 수 없다.
깨어 있을 때의 마음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짓는 행이 당연히
이숙(異熟)의 과보를 받는다.
수승하고 하열한 것이 같지 않기 때문이지
바깥의 경계 때문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설사 깨어 있을 때 받는
고락(苦樂) 등의 과보가 실제라 하더라도
이것도 짓는 자와 받는 자가 없으니
모두 허깨비나 꿈과 같을 뿐이다.
- 명추회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