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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

인연의 기운

 

지수화풍의 네 가지 요소를 빌려서

이 몸을 삼았고

 

마음은 본래 생기는 것이 아닌데

대상을 인하여 존재한다.

 

만약 대상이 없으면 마음이라는 것도

또한 없으므로

 

죄와 복도 환술처럼 생겼다가

사라지도다.

 

[예컨대

‘마음은 본래 형상이 없으나

대상에 의지하여 생겨나나니

대상의 본성도 또한 텅 비어 없으니

마음과 대상이 한결같다.’

라고 한 말과 같다.]

 

 

假借四大以爲身

心本無生因境有

 

前境若無心亦無

罪福如幻起亦滅.

 

[如云

心本無形 托境方生

境性亦空 心境一如]

 

강 설

 

 

여기에 소개한 게송은 『전등록』에 보인다.

 

우리나라 스님이 저술한 유일한 경전이라고

할 만한 이 책의 제목을 백운 스님은

불조직지심체요절

(佛祖直指心體要節)이라고 하였다.

 

즉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이

사람의 마음을

중간의 다른 매개체나 거리나 간격이 없이

 

곧바로 가리킨 내용들 중에서

요긴하고 중요한 부분들만을 모아 놓았다는

뜻이다.

 

좀 더 부연하면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선불교의 종지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서

본성을 보아 알게 하고

부처가 되게 한다는 뜻이다.

 

사람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부처님이며 성인이다.

 

달리 다른 수행과 방법을 필요로 하지 않고

사람이 본래로 완전무결하다는

높은 뜻을 드러내는 내용이다.

 

 

이것이 불교에서도

가장 발달한 선불교의 중요한 근본 종지이다.

 

다른 경전의 가르침처럼

3아승지겁을 수행해서 비로소 부처가 된다는

내용과는 전혀 다르다.

 

10신(信)·10주(住)·10행(行)·

10회향(廻向)·10지(地)

·등각(等覺)·묘각(妙覺) 등의

52위(位)의 지위 점차를 밟아 올라가야

 

비로소 부처의 경지가 있다는

가르침과도 거리가 멀다.

그래서 선불교를 불교의 완성이라 한다.

 

마음이 있는 사람은

조금도 더 닦을 것도 없이

그 마음 그대로가 부처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가르침이다.

 

따라서 마음의 실상과 우리들 몸의 실상도

아울러 깨우쳐주고 있다.

 

우리들의 몸은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의 네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 이 몸을 형성하고 있다.

 

때가 되어 그 네 가지 요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면

이 몸은 아무 데도 없다.

 

그와 같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물거품과 같고,

날아가는 연기와 같고,

흩어지는 먼지와 같은 것을 착각하여

수백 년 수천 년 영원히 존재하리라고 믿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어리석은 인생이다.

 

마음[心王]과 마음의 작용[心所]이라는 것도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물과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같은 등등의

대상이 있음으로 인하여

비로소 존재하게 되었다.

 

실로 대상 없는 마음이 어디에 있던가.

그러므로

대상이 없으면 마음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몸도 마음도 착각에 의하여

환영처럼 보일 뿐이다.

 

이 얼마나 딱하고 허무한 일인가.

 

그런데 인간들은 죄니 복이니 하는 일에

목을 매고 있지만,

죄와 복은 몸이 있고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죄와 복의 근본이 되고 뿌리가 되는

몸도 마음도 없는데

 

그 그림자와 같은

죄와 복에

인생을 걸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아무리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라 하더라도

인연의 기운이 있는 동안

잠깐 있는 듯이 보이지만

인연의 기운이 다하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고 사라지고 만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살다가 갔고

아버지도 그렇게 살다가 갔고

나도 또한 그렇게 갈 것이다.

 

후손들도 역시 그 길을 밟을 것이다.

먼저 가신 분들에 대해서

누가 두고두고 기억하겠는가.

 

기억도 잠깐이며 기억하던 사람조차도

어느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것이

진실한 모습이며 진리이다.

 

이러한

바르고 참된 이치를 깨달아 사는 일이

직지(直指)의 서지학적 가치보다

세계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보다

몇 만 배 더 소중한 일임을 알아야 하리라.

 

 

- 직지 강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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