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한 것이 사실인가
눈앞에 선명하게 사물이 보이고
분명한 내생각으로 인식하고 있다.
모든 것들이 진실이 아니고
환상이요 허망함이 실재라고 한다.
이 사실을
어떻게 믿으라는 건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보이는 것이 안보인다는 것은
깨기 전에는
이해할 수가 없는 불가사의 한 일이다.
이 사실을
초월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 해탈은
오랜수행과 고행 끝에 오거나
부처나 성인들이 하는 것이라며
보통,
사람들은 관심을 끄거나
시작했다가 포기하기도 한다.
깨고 나면
선 어록이 이해가 되면서
탄성이 나고 희열을 느끼지만
깨기 전엔
듣거나 읽어도 막혀 답답하다.
끈기있게 반복하다 보면
들리거나 약간 알 듯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내려놓지 않은 내생각이 있어
그 이해는 곧 내방식으로 소화한다.
깨기가 쉬운데도
깨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를 놓아주지 않으니
깰 수가 없고
그 자리에서 진척없는 공부를 한다.
기존생각들과 깨는생각이 충돌하여
허망한 나는 변화를 받아주지 않는다.
이분법이 작동한다.
옳고그름을 분별하는 것이다.
양변이 있으면
두가지 생각놀음으로 평행선이 되어
본성은 달아난다.
분별하는 생각은
나를 최선으로 만든다는 착각으로
곧 본마음을 차단한다.
마음을 열고 수용하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깨달음은 내게로 가까이 온다.
생각이
양변을 떠나 중도가 되었을 때
하나가 된다.
있음과 없음이
하나가 되고
그 하나가 됨은
망상도 없고 깨달음이란 것도 없이
전부가 되고
부처가 된다.
어떻게 하면 하나가 될까
이것을 아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을 아는
이것이 무엇인지
이 글을 보고 아는
그가 누구인가를
내가 보고 인지하기 전에
언제나 먼저 보고 있는
소리를 듣기전에 먼저 알고
눈으로 보기전에 먼저 아는
이것을 아는 것이
이 공부의 시작이요 전부이다.
선어록을 이해하고 깨는 것이 아니라
깨고나서 보면 이해가 되는 공부이다.
허망함이 실재라는 것을 알면
꿈이 세상이요 세상이 꿈같고
그림자 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 竹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