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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

진여자성의 근본은 무심

진여(眞如)와 무심(無心)

 

   

 

“진여의 성품은 실로 공한 것입니까, 실로 공하지 않은 것입니까? 만약 공하지 않다고 말하면 곧 모양이 있는 것이요 만약 공하다고 말하면 곧 단멸이니, 일체 중생이 마땅히 무엇을 의지해서 닦아야 해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진여의 성품은 공하면서 또한 공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진여의 묘한 본체는 형상이 없어서 얻을 수 없으므로 또한 공하다고 하느니라. 그러나 공하여 모양이 없는 본체 가운데에 항사묘용이 구족하여 곧 사물에 응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또한 공하지 않다고 하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하나를 알면 천 가지가 따라오고 하나가 미혹하면 만 가지가 미혹한다’ 하니, 만약 사람이 하나를 지키면 만 가지 일을 마치는 것이니 이것이 오도(悟道)의 묘함이니라. 

 

경에 이르기를, ‘삼라만상이 한 법의 도장 찍힌 바이다’라고 하니 어떻게 해서 한 법 가운데에서 갖가지 견해가 나오는 것인가?

 

이러한 공업(功業)은 행함으로 말미암아 근본이 되니 만약 마음을 항복받지 않고 문자를 의지해서 증득하려 하면 옳지 못함이라.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여서 피차가 함께 떨어질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하여 자세히 그것을 살필지니라.



다만 일이 닥쳐옴에 받아들이지 않아 

일체처에 무심함이니 

이렇게 얻은 사람은 열반에 들어 

무생법인을 증득하느니라. 

이것을 불이법문이라 하며 또 다툼이 없다고 하며 

일행삼매라고 하나니, 



왜냐하면 필경 청정하여 아상과 인상이 없는 까닭이니라. 애증을 일으키지 않음이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며 보는 바가 없음이니, 곧 이것이 진여의 얻음이 없는 변론이니라.”



진여자성을 돈오해야 하기 때문에 그 돈오의 내용을 말하지 않을 수 없어서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공이란 

진여 자체가 본래 형상이 없어서 

부처도 그것을 볼 수 없고 조사도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단멸이 아니라 

항사의 묘용이 구족해서 미래겁이 다하도록 

우리가 자유자재하게 활용할 수 있으니 

이것을 공하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진여를 바로 안 사람이면 

 

공함이 공하지 않음이며 

공하지 않음이 공함임을 아는 것이니, 

 

공함이나 공하지 않음에 집착되면 

중도를 모르는 동시에 진리는 영원히 모르고 

돈오도 모르고 무념도 모르는 것입니다. 

 

무념의 없음[無]이란 

공함을 말하니 일체가 공하다는 말이며, 

생각[念]이란 진여의 바른 생각[正念]이니 

공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함과 공하지 않음이란 

무념의 뜻을 표현한 것입니다.

 

경에 말씀함과 같이 

일체만법이 진여묘용 아님이 없기 때문에 

한 법을 알면 일체만법을 알 수 있는 것이고 

한 법에 미혹하면 일체만법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를 지키면 만 가지 일을 마치게 되는 것이니 

여기서 하나를 지킨다 함은 

한 가지 공부만 하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 공부만 할 것 같으면 일체 만사가 

성취되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이 오도(悟道)의 묘(妙)라는 것입니다. 

 

이 ‘오도의 묘’라는 말이 무엇을 지적하느냐 하면 

일체만법이 모두 진여자성에서 나온 것이고 

진여자성의 근본은 바로 무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공부하든지 무념인 이 진여자성을 확철히 깨치면 일체가 원만구족하여 여기에 한 법을 더하려야 더할 수도 없고 덜려야 덜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공부를 하다가 저 공부를 하다가 갈팡질팡하지 말고 오직 진여본성을 깨치는 무념을 증하는 돈오법문만 의지하여 돈오문에 들어가면 전체가 원만구족하다는 것입니다. 이 공부 저 공부를 겸해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원만한 공부를 성취할 수 없지 않나 하는 이런 의심을 다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해탈을 하려고 한다면 언제든지 마음을 닦아서 깨쳐야 되는 것이지 문자를 의지해서 증득하려고 하면 참다운 공부를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대주스님이 강력히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돈오란 

양변을 여읜 중도이며 

무념이며 

구경각이며 

성불이며 

열반임을 

 

전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두 가지 성품이 공하다는 것을 가지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돈오입도요문론 강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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