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란 무엇인가
연기緣起라고 쓸 때의
연緣은 ‘조건, 인연’이라는 뜻이고,
기起는 ‘일어나다’라는 뜻입니다.
원래 빨리어로
연기를 빠띳짜paṭicca 사뭅빠다samuppāda라고 하는데, 빠띳짜는 ‘의지하여’, ‘~을 조건으로’라는 뜻이고,
사뭅빠다는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중국에서 연기라고 번역했고,
영어로는 dependent origination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연기는 ‘조건 따라 일어난다’
또는 ‘의지하여 일어난다’라는 의미입니다.
연기의 가르침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하려면 부처님 당시의 사상 체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여러 종류의 외도들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외도의 가르침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하나는 절대적인 브라만이 변화해 이 세상이 전개된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브라만과 각 개인에게 내재된 영원불멸하는 자아[atman]를 동일시해 일체화를 지향합니다.
다른 하나는 지地, 수水, 화火, 풍風 등의 여러 요소가 결합해 우주의 모든 것이 형성되었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이 모든 요소는 분해되고 그것으로 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첫 번째 사상은
존재가 죽어도 자아는 사라지지 않고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상견이고,
두 번째 사상은
존재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단견입니다.
이런 견해가 대세이던 당시 상황에서 부처님은 상견과 단견, 둘 다 진리가 아님을 설파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어떤 절대자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영원한 자아가 있는 것도 아니며, 죽으면 모든 게 끝나는 것도 아니라 어떤 분명한 원리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 분명한 원리란
‘모든 것은 조건이 형성되면 일어났다가, 조건이 사라지면 소멸한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의 사상 체계로 보면 굉장한 전환입니다.
지금의 우리는 이것을 쉽게 받아들이지만
‘조건 따라 일어난다.’
는 이 말 한마디가
당시로는 획기적인 가르침이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반향이 일어납니다.
사리뿟다 존자가 그 말 한마디를 듣는 순간
수다원이 되었을 정도로 조건 따라 일어난다는 말에는
심오한 진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조건 따라 일어난다는 말을 이해하면
무상無常함도 이해하게 됩니다.
조건 따라 일어나는 것은 조건이 사라지면
소멸하기 마련인 것이므로 영원할 수 없어서 무상합니다.
또한 무상하다는 것은 불완전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괴로움[苦]의 특성이 있습니다.
무상하고 괴로움인 것은
‘일어난 법이여 사라지지 말라.’고 한다거나
‘괴로움이여 일어나지 말라.’라고 해도 그렇게 될 수 없으므로
현상들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자아[我]는 없습니다. 그래서 무상하고 괴로움인 것은 무아無我입니다. 이처럼 연기를 이해하면 무상함뿐만 아니라 괴로움과 무아에 대한 이해도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연기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곧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연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어느 것이 진짜 부처님 가르침인지 끊임없이 혼란이 옵니다.
바른 견해를 세우기 위해서는
연기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실제로 수행을 하다 보면 연기에 대한 통찰이 생기고,
연기에 대한 이해가 점점 깊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의 향상은 연기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느냐와 비례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연기는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조건 짓는 법’이 있고,
‘조건 따라 생긴 법’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인과관계를 드러낸 것을 연기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십이연기 중 제일 처음에 ‘무명無明이 있으므로 의도적 행위[行]가 있다.’라고 설하셨는데 이것은 무명이라는 조건에 의해서 의도적 행위가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앞에 있는 무명은 뒤의 결과가 일어나기 위한 조건을 지어 주는 법이기 때문에 ‘조건 짓는 법’이라고 하고, 뒤에 나오는 의도적 행위는 무명이라는 조건에 의해서 일어난 결과이기 때문에 ‘조건 따라 생긴 법’이라고 합니다.
조건은 여러 가지 조건들의 화합입니다. 한 가지만이 조건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면 땅도 필요하고, 햇빛도 필요하고, 물도 필요합니다. 이런 조건들이 두루 갖추어져야 비로소 열매를 맺을 수 있지 그중 하나의 조건이라도 빠지면 제대로 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무명 때문에 의도적 행위가 있다고 이야기할 때는 의도적 행위가 일어나게 하는 조건 중 가장 주된 조건이 무명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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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에 나오는 정형구를 보면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치 두 개의 막대기가 서로 기대어 서 있듯이 하나가 지탱해 줌으로써 다른 것이 서 있을 수 있고, 하나가 지탱해 주지 못하면 다른 것도 서 있을 수 없는 것이 연기의 기본적인 구조입니다.
초기불교 윤회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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