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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

내려놓으면

내려놓으면
세상이 나의 일부가 된다
 
 
 
 
모든 것을 버리고 또 내려놓아야 한다.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 
이 세상에 대한 모든 사랑과 미움이다.


《법화경》에서 
부처는 자기 아들이나 가족에게도 특별한 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가족을 대하는 것도 제자나 중생을 대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부처는 누군가를 특별히 친하게 대하지도, 소원하게 대하지도 않았다.

부처는 모든 이를 자비로 대했다. 
설사 적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제바달다품〉에서 
부처가 제일 먼저 보여 준 행동은 
‘버림’이었다. 

그는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버렸다. 

두 번째로 보여 준 행동은 적을 대하는 태도였다. 

불교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친숙한 사람이라면 제바달다가 부처에게 적대적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세속의 관점에서 볼 때 그는 부처의 적이었다.
부처는 자신의 적인 그를 어떻게 대했을까? 

〈제바달다품〉에서 
부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래는 제바달다의 지식과 지혜 덕분에 
피안에 이르는 지혜를 얻고 자비희사(慈悲喜捨, 중생을 위하는 네 가지 마음 수행)를 이루었으며, 서른두 가지 거룩한 몸매와 여든 가지 잘 생긴 모양을 갖추어 황금처럼 빛나는 몸으로 중생을 비추었다. 

또 중생을 위해 불법을 널리 설하고, 중생을 불법으로 인도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열 가지 힘과 네 가지 두려움 없는 마음, 네 가지 교화하는 법을 가졌으며, 부처의 열여덟 가지 공덕과 불가사의한 신통력을 얻어 무상정등정각을 이루고 널리 중생을 제도했다. 이 모두가 제바달다 덕분이다.”
 
제바달다는 누가 봐도 부처의 적이었지만, 부처는 그가 자신의 좋은 스승이자 벗이며 그의 도움으로 성불하게 되었다고 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부처가 앞에서 《법화경》에 담긴 오묘한 법은 세상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한 것이다. 세상에는 사람과 사람 간의 갈등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는 다툼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세상에서 흔히 쓰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무력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면 힘과 권력이 센 사람이 이기게 된다. 옛날 개국 황제들은 대부분 무력으로 나라를 빼앗아 황제가 되었다.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는 다툼은 주먹다짐으로 해결한다. 

둘째, 규칙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양쪽이 협상을 통해 객관적인 규칙을 세운 뒤에 그 규칙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 서양의 민주주의가 대표적인 예다. 보통 사람들 사이의 다툼이라면 법적 절차에 따라 해결한다.

현재는 후자가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다.  
첫 번째 방법은 단기적인 효과를 얻을 수는 있지만 생명의 희생이 따른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한다. 폭력이나 권력을 통한 해결은 사회에 악순환을 낳고 불안과 혼란을 일으켜 미래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짓밟는다. 

협상과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두 번째 방법은 공통된 가치관과 원칙을 수립해 유혈 충돌을 피할 수 있으므로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방법으로도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갈등으로 인한 원한, 분노 등의 감정이 법의 테두리 밖에서 계속 존재하며 사회를 긴장시킨다.
 

그러므로 
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우리가 늘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공자는 
원한이 있다면 직접적으로 원한을 되갚아 주라고 말했지만, 

부처와 예수는 
“원수에게 자비로 대하라”,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했다. 

공자의 방법은 평범한 사람들도 할 수 있지만 부처의 방법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부처가 되고 싶다면 부처의 방법을 따라야 한다. 

원수를 자비로 대해야만 
인격을 수양해 성자가 될 수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좌절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고, 
자신과 환경 사이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부처의 방법을 바꾸어 표현하면, 
남들이 자신에게 아무리 악독하게 대해도 그것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어 

자기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힘으로 삼는 것이다. 

부처가 자신을 해친 사람에게 고마워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부처는 제바달다를 적으로 여기는 대신 그의 비방과 방해가 자신에게 고통을 참아 내는 인욕 수행의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가장 내려놓기 힘들고 
가장 상처가 큰 원망은 
바로 사랑 때문에 생긴 미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찌 사랑뿐이겠는가? 
어떤 관계든 마찬가지다. 

원망은 
당신이 미워하는 상대를 해치는 것이 아니다. 


그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원망을 내려놓지 못하면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이 자신에게 무거운 짐이 된다. 결국 상대가 당신의 몸과 마음을 통해 당신에게 계속 상처를 주는 셈이다. 

하지만 원망을 내려놓는다면 
그 누구도 당신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물론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에 집착하면 그 사랑은 물론이고 당신이 집착하는 상대까지 모두 당신의 짐이 된다.
 

〈제바달다품〉으로 다시 돌아와 보자. 제바달다에 대한 부처의 평가를 다시 읽어 보고 적을 대하는 부처의 태도를 살펴보면 


우리 삶에서 
그 어떤 짐도 스스로 짊어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세상이 당신을 어떻게 대하든,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당신이 그걸 바꿀 수 없다면 
굳이 성낼 필요도, 
집착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내려놓으라. 내려놓지 못하면 
세상은 당신의 적이 될 것이고, 
내려놓으면 세상이 당신의 일부가 될 것이다.
 

  원망을 내려놓는다면

  그 누구도 당신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내려놓으라.

  내려놓으면 세상이 당신의 일부가 될 것이다.

 
     법화경 마음 공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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