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는 본래 공적한데 부술 필요가 있는가
물 음
세제(世諦)의 입장에서 보면 범부와 성인은 천지만큼 차이가 있다. 범부는 마음 밖에 법을 세워 허망한 집착으로 보고 듣고, 성인은 이미 일심(一心)을 요달하였는데, 어떻게 범부의 지견(知見)과 같다고 하는가?
답 함
성인은 비록 지견이 있다 할지라도 만물이 허망하여 마치 환술로 생기는 것과 같다는 것을 항상 알아서 어떤 집착도 없다.
『대열반경(大涅槃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이 번뇌의 생각으로 인해 전도된 망상을 일으킨다면 모든 성인은 진실로 전도된 망상은 있지만 번뇌는 없을 것입니다. 이 뜻이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어째서 성인이면서 전도된 망상이 있다고 하는가?’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일체성인이 소에 대하여 소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또 그것을 소라고 하며, 말에 대하여 말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또 그것을 말이라고 합니다. 남녀노소는 물론 집과 수레, 가고 오는 것에 대해서도 그러하니, 이것을 전도된 망상이라고 합니다.’
‘선남자여, 일체범부에게 두 종류의 생각이 있으니,
첫째는 세속에 떠돌아다니는 생각이고,
둘째는 집착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일체성인에게는 오직 세속에 떠돌아다니는 생각만 있고 집착하는 생각은 없다.
일체범부는 잘못 관찰하기 때문에 세속에 떠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집착하는 생각을 내지만
일체성인은 잘 관찰하기 때문에 세속에 떠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집착하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범부의 생각은 전도된 망상이라 하고, 성인은 비록 보고 듣는 작용이 있더라도 전도된 망상이라 하지 않는다.’”
또 경계는 본래 스스로 공적한데 굳이 경계를 부술 필요가 있겠는가.
마음은 신령스러워 스스로 비추는데 굳이 인연을 빌려 생기겠는가. 그러므로 성인의 지견(知見)은 범부가 주체와 대상을 망정(妄情)으로 집착하는 지견과는 다르다.
명추회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