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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

현재를 살라

 

 

오로지

고요한 지금 이 순간을 살라

 

 

수행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사체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은 성문승이고,

십이인연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은 연각승,

육도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은 보살승이다.

 

 성문승과 연각승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고, 보살승은 타인을 이롭게 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그래서 성문승와 연각승은 소승, 보살승은 대승으로 부르기도 한다.

 

수행의 결과에 따라 구분하면,

사체를 깨달아 생사의 고해에서 벗어난 이를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하고,

반야바라밀다로 수행해 생사의 고해에서 벗어나고 번뇌를 끊고 중생을 구제하는 이를 보살이라고 하며,

 

 반야바라밀다로 수행해 자각(自覺, 스스로 깨달음-옮긴이), 각타(覺他, 불법을 전파해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함-옮긴이), 각만(覺滿, 깨달음을 원만하게 행함-옮긴이)의 경지에 도달한 이를 부처라고 한다.

 

반야심경에서

 

 “얻을 것이 없으므로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간다”

 

라는 구절은 보살의 경지를 설명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뒤에서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라고 하여 부처의 경지를 설명하고 있다. 삼세란 과거, 현재, 미래를 의미한다.

 

불교에는 과거불, 현재불, 미래불이 있다.

부처가 세상에 있을 때 부처는 현재불이고,

미륵은 미래불이며,

가섭(迦葉)은 과거불이었다.

 

또 지난 세상에 출현했던 일곱 부처를 과거칠불이라고 하는데,

 

비바시불(毘婆尸佛),

시기불(尸棄佛),

비사부불(毘舍浮佛),

구류손불(拘留孫佛),

구나함불(拘那含佛),

가섭불(迦葉佛),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다.

 

모든 부처는 반야바라밀다로 수행해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

 

이보다 더 높을 수 없는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옮긴이)에 도달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산스크리트어를 음역한 것으로,

아누다라(anuttatra)는 ‘위가 없는’, ‘초월할 수 없는’이라는 뜻이고,

 

삼먁(samyak)은 ‘철저하게’, ‘정확하게’, 삼보리(sambodhi)는 ‘지혜를 깨우치다’는 뜻이다. 이 모든 의미를 합치면 ‘무상정등정각’이 되며 자각, 각타, 각만의 경지로 해석할 수도 있다.

 

부처는 깨달음을 원만하게 행하는 경지에 도달했지만, 인간 세상에 있었다. 현재의 생활 태도와 마음가짐을 원만하게 함으로써

 

현실 속에서 원만함을 실현한 것이다.

흔히들 “현재를 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지금 현재의 시간을 즐겁게 누리며 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마음속 스트레스를 떨쳐 내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불교의 관점에서 “현재를 살라”는 말은 그때그때 즐기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진정한 모습을 깨닫고 즉시 멈추라는 의미다.

무엇을 멈추라는 말일까?

 

버릇과 욕망을 멈추고 자신의 본성을 되찾아 자기 본성대로 살라는 것이다.

 

본성에 따라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흔들림 없이 지키며 관조해야 한다.

 

바깥세상이 아무리 혼란해도 생각이 동요되지 않는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면 구속에서 벗어나 날아오를 수 있다.

 

바깥세상에 휩쓸리지 않도록 경계하고 헛된 생각을 떨쳐 내 무엇을 해도 걸림이 없는 경지에 올라선다면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다.

 

이 단계에 도달했다면 온전히 날아올라 자유로운 비상을 완성한 셈이다. 비상을 완성했다면 처음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처음의 단순함, 즉,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단계로 되돌아가야 한다.

 

옛날 한 시인은 이런 시를 썼다.

 

    인생의 궁함과 통함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네

    세상만사는

    본래 바람에 나부끼는 쑥과 같구나

    공은 색이요, 색은 공이니

    모두 안개 속으로 들어가 흩어지노라

 

    현재란 무엇이고, 과거는 무엇일까?

    시간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현재가 눈 깜박할 사이에 과거가 되고,

    미래는 또 어느새 현재가 된다.

 

 20년 뒤를 생각해 보면 아주 먼 훗날인 것 같지만, 20년 전을 떠올려 보면 세월이 참 빠르게 느껴진다.

 

그러므로 현재도 과거도 미래도 없다.

오로지 고요한 지금 이 순간만 있다.

이 고요는 끝이 없고 시간의 밖에 있다.

 

사람이 현재, 과거, 미래를 살면서 벗어날 수 없는 시공의 족쇄에 묶여 있는 것 같지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마음,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본성은 우리를 시간과 공간의 밖에 있는 자유로운 경지로 안내한다.

 

당나라 때 지근선사는

“어떻게 하면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청산은 본래 움직임이 없으며 흰 구름만 쪽빛 하늘에 떠서 오락가락 할 뿐이네.”

 

우리는 복잡한 세상에서 수많은 일들을 위해 종종걸음을 치며 살고 있다. 좋은 것은 아주 조금만 얻어도 기뻐하고 아주 조금만 잃어도 슬퍼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우리 내면의 충실함과 평온함과는 비할 수 없다.

 

휘영청 밝은 달 아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혼자서 한가로이 연못가를 거닐거나 등불 아래에서 빛바랜 편지를 읽고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은 오직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현재도 과거도 미래도 없다.

     오로지 고요한 지금 이 순간만 있다.

     이 고요는 끝이 없고 시간의 밖에 있으며,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고 가질 수 있다.

 

         평생 걱정 없이 사는 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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