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가 아니다
동산양개 선사가 운암 화상에게 물었다.
“백년 뒤에 문득 어떤 사람이 ‘스님의 참 모습을 그릴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운암 화상이 가만히 있다가 말하였다.
“다만 이것이다.”
동산 선사가 오랫동안 생각하거늘 운암 화상이 말하였다.
“이 일을 알려고 한다면 모름지기 자세히 살펴야 하리라.”
동산 선사가 오히려 의심하였는데 뒷날 물을 건너다가 그림자를 보고는 그 뜻을 크게 깨달았다. 이에 게송을 남겼다.
절대 다른 곳에서 찾지 말라.
아득하게 나와는 더욱 멀어지리라.
내가 지금 홀로 가고 있으니
곳곳에서 그를 만나도다.
그가 지금 바로 나요,
나는 지금 그가 아니다.
응당히 모름지기 이렇게 알아야만
바야흐로 여여함에 계합하리라.
洞山良价禪師 問雲巖和尙 百年後 忽有人 問 還貌得師眞不 如何祗對 巖 良久云 只這是 師 佇思 巖云 承當者箇事 大須審細 師 猶涉疑 後 因過水覩影 大悟前旨 乃有偈曰 切忌從他覓 迢迢與我疎 我今獨自往 處處得逢渠 渠今正是我 我今不是渠 應須恁麽會 方得契如如.
강 설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는 운암 화상의 법을 잇고 조산본적(曹山本寂, 840~901) 선사를 제자로 둔 대선사로 선종5가 중의 하나인 조동종의 창시자이다.
평소 효성이 지극하였으나 출가하였다. 승려가 된 뒤에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어머니를 이별하고 출가의 길을 걷겠다는 사친서(謝親書)는 천하의 명문(名文)으로 강원의 교과서인 『치문(緇門)』에도 실려 있다.
스승인 운암 화상이 제자를 가르치는 방법이 슬기롭다. 사람이 살다가 죽은 뒤에 그 사람의 진영(眞影)을 그리는 문제에 대해서 다만 묵묵히 있음으로써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만 이것뿐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문제라도 백 년이나 천 년 후에나
지금 이 순간의 일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참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동산 선사는 그 뜻을 알지 못하였다.
어느 날 물을 건너다가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는 비로소 그 뜻을 깨닫게 되었다.
깨닫는 데도 여러 가지 계기가 있다. 갑이라는 화두를 들다가 을이라는 화두를 깨닫기도 하고, 을이라는 화두를 들다가 병이라는 화두를 깨닫기도 하며, 때로는 화두와 전혀 별개의 일에서 깨닫기도 하고 언어나 문자에서 깨닫기도 하는 등 계기는 매우 다양하다.
동산 선사는 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깨달은 바가 있어서 오도송(悟道頌)을 지었다. 덧붙이자면 이렇다.
“자기 자신 이외의 다른 것에서 찾지 마라. 만약 다른 것에서 찾으면 자신과 더욱더 멀어진다. 내가 지금 제대로 완벽하게 홀로 있기만 하면 이 몸이야 어느 곳에 있든지 아무런 상관없이 그 모든 것들은 바로 나 자신이다. 오직 나일뿐이지 다른 것은 존재할 수 없다.
반드시 이렇게만 알면 모든 존재가 저절로 그러한 도리에 계합하리라. 현재 이대로일 뿐 굳이 고치거나 다듬거나 바꾸거나 할 필요가 없다.”라고 할 수 있다.
직지 강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