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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

주객분별을 넘어선

 


불공(不空)

 

 

이른바 ‘불공’은 법체가 공이고 허망함이 없음을 이미 드러냈기 때문에 (그 법체가) 곧 ‘진실한 마음’(진심)

이며 항상되고 불변하여 정법이 충만하게 갖추어져 있으므로 ‘불공’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所言不空者, 已顯法體空無妄故, 卽是眞心, 常恒不變淨法滿足, 故名不空.

 

 

진여는 허망한 차별상을 떠났기에 공이라고 하지만, 허망한 염법(染法) 대신 청정한 정법(淨法)을 구족하고 있기에 그 측면에서 공이 아닌 불공이라고 부른다.

 

진여는 진실된 마음이므로 곧 진심이고 일심이다. 이는 생멸하고 변화하는 일체 제법의 배경이 되는 것으로서 불생불멸하며 항상되다.

 

생멸 변화하는 것이 망념에 따라 일어나는 염오(染汚)의 법이라면, 그 바탕이 되는 진여는 허망분별을 떠난 청정한 법이다.

 

진여는 이런 청정법을 구족하고 있으므로 단지 공이 아니라 불공이다.

 

또한 (진여에는) 취할 수 있는 상이 없으니, 념을 여읜 경계는 오직 깨달음[證]과만 상응하기 때문이다.

 

亦無有相可取, 以離念境界唯證相應故.

 

진여는

허망분별을 넘어서고

분별적 념과 언설을 넘어서며

일체 상을 여읜 것이다.

 

 

상(相)은 객관화된 표상이고,

념(念)은 주관적 사념이다.

념을 여의고 상을 여의었다는 것은 주관적 사념이나 객관적 표상을 다 여의었다는 것,

한마디로 주객 분별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처럼 념도 상도 없는 경지, 무념무상의 경지, 주객 분별이 멸한 경지는 오직 무분별지(無分別智)로서 증득되는 경지이다.

 

 

 

즉 마음이

주객 분별을 넘어선 그 경지에 스스로 들어감으로써만 알아낼 수 있는 경지인 것이다.

 

 

 

차별상이 일상적 사고와 개념적 분별 작용을 통해 파악되는 것이라면, 그런 차별상을 떠난 전체의 바탕은 그와 달리 일체 분별을 넘어 그 자체로 포착되어야 한다.

 

마음이 차별적인 현상 세계에 머물러 있지 않고

스스로 차별상을 여읜 바탕이 됨으로써만,

즉 마음의 눈이 표층이 아닌 심층의 바탕으로 내려가 스스로 바탕이 되고 전체가 됨으로써만,

심층 바탕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스스로 됨으로써만 알 수 있는 것을 ‘증득(證得)’이라고 한다. 진여는 그것을 객관화해서 대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진여가 됨으로써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증득의 방식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대승기신론 강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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