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잣대가 썩어 버려
온갖 시비와 잘잘못이 용해되고,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잊은 채
지금 여기에 그냥 존재하는 자,
그는 한가하다.
‘나’라는 생각에서
2분의 분별이 시작되니,
그 생각이 온갖 번뇌의 근원이다.
도道에 이르는 데는 어려움 없나니
다만 분별을 꺼릴 뿐
미워하거나 사랑하지만 않으면
확 트여 명백하리라.
- 『신심명』
오직 유무有無를 취하지만 않으면
곧 진정한 해탈이다.
- 『돈오입도요문론』
모든 현상은 그냥 흘러가는데
스스로 온갖 차별을 일으켜 얽매이고 분노한다.
온갖 감정의 뿌리는
‘좋다/싫다’이다.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단 하나의 길은
‘좋다/싫다’에 둔감해지는 것이다.
‘좋다/싫다’는 자신이 그은 허구의 분별이다.
‘좋다/싫다’ ‘옳다/그르다’ ‘깨끗하다/더럽다’ 따위
2분의 분별이 끊어진 무분별의 상태,
이를 공空이라 한다.
공은 모든 현상의 차별을 떠난 상태여서,
온갖 번뇌와 함께하지 않는다.
온갖 2분의 분별은
어떤 대상이나 상태에 대한 생각의 대립이다.
그 대립의 한쪽은 다른 한쪽을 전제로 하고,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도 없다.
‘좋다’가 없으면 ‘싫다’가 없고,
‘깨끗하다’는 ‘더럽다’를 전제로 하고,
‘꽃’은 ‘꽃 아닌 것’과 대립한다.
마음이 오염되었다는 것은
2분의 분별과 감정에 물들었다는 뜻이다.
2분의 분별과 감정이 갈등의 뿌리다.
‘더럽다’는 생각 때문에
‘깨끗하다’는 생각이 일어나고,
‘깨끗하다’는 생각이 있어
‘더럽다’는 생각이 일어난다.
중생은 끊임없이 어느 한쪽에 집착하고
다른 한쪽에 저항(분노)한다.
그 두 생각이 없다면 어찌 갈등이 일어나겠는가.
2분의 분별은 허망한 생각이다.
그런 건 애당초 있지도 않았다.
2분의 분별이 용해되어 버린 상태,
이를 공空이라 한다.
헛된 생각으로 온갖 차별이 있으니,
그 생각 소멸하면
‘하나’다.
하나에는 경계가 없어
삶도 죽음도 없다.
‘무無’.
미혹하면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생기고
깨달으면 좋음과 미움이 없나니
모든 두 끝은
생각하고 가늠하는 데서 생긴다.
꿈속의 허깨비와 허공의 꽃을
어찌 애써 잡으려 하는가.
얻음과 잃음, 옳음과 그름을
일시에 놓아 버려라.
잠에서 깨어나면
온갖 꿈 저절로 사라지고
마음이 차별하지 않으면
만법은 하나니라.
- 『신심명』
인간은
‘기분 좋다’를 추구하는 단순한 감정의 동물이다.
기분 좋은 상태에 집착하면 할수록,
그 상태에 민감하면 할수록,
기분 나쁜 상태에 더욱 더 저항하게 되어
불안정에 휘둘린다.
안정은
기분 좋은 상태에 집착하지 않고,
기분 나쁜 상태에 저항하지 않는
중도中道에 있다.
집착할 것도 저항할 것도 없는 게
해탈이다.
‘기분 좋다’와 ‘기분 나쁘다’에 민감하면
결코 괴로움과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살다 보면 온화한 날도 있지만
몹시 춥거나 무덥기도 하고
천둥치고 폭우도 내린다.
‘기분 나쁘다’는 느낌이 일어나면
곧바로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야 그 기분에 끌려가지 않는다.
‘기분 나쁘다’는
에고에서 일어나는 부질없는 감정이다.
‘기분 나쁘다’에 얽매이지 않으면
번민할 게 없다.
인욕이란 ‘기분 나쁘다’에 집착하지 않는 수행이다.
중생의 마음은
에고를 바탕으로 2분화되어,
한쪽을 추구하고 다른 한쪽을 회피하며
그 양쪽을 끊임없이 왕복한다.
하지만 한쪽을 지나치게 탐닉하지 않고,
다른 한쪽을 지나치게 싫증내지 않으면
흔들림이 약화되어
안정에 이른다.
- 인생과 싸우지않는 지혜 중에서 -